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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조잡해 어르신은 멀미"…50억 통영VR존, 하루 이용 17명 [2023 세금낭비 STOP]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남 통영의 가상현실 체험관 '통영VR존'. 지난 1월부터 임시 휴관에 들어가면서 출입문이 잠겨 있다. 안대훈 기자

경남 통영의 가상현실 체험관 '통영VR존'. 지난 1월부터 임시 휴관에 들어가면서 출입문이 잠겨 있다. 안대훈 기자

'역사·관광 도시' 통영…그 중심에 애물단지 

지난 22일 경남 통영시 문화동 삼도수군통제영. 조선시대 충청·전라·경상 삼도수군을 통솔한 해상 방어 총사령부로, 통영(統營)이란 지명이 유래한 역사적인 명소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 시가지와 바다가 잘 보이는 통제영은 관광 포인트로 꼽혀 많은 이들이 찾는다.

하지만 이곳에 사람 발길이 뚝 끊긴 시설이 있다. 바로 통영VR(가상현실)존이다. 매년 적자가 나면서 개관 3년 만에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 그간 운영은 통영시 산하기관인 통영관광개발공사가 맡았었다. 통영VR존을 대신 맡아 운영할 민간업체가 나타나지 않자 지난 1월부턴 아예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VR 장비 11종은 비닐에 덮여 있는 상태다. 통제영 앞 관광안내소 직원은 “VR존 이용객은 거의 없었다”며 “이용했다가 어지러워 멀미하는 어르신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경남 통영의 가상현실 체험관 '통영VR존' 출입문에 '임시휴관'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안대훈 기자

경남 통영의 가상현실 체험관 '통영VR존' 출입문에 '임시휴관'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 1월부터 임시 휴관 중인 경남 통영VR존. '통영해저탐험' VR장비가 투명 비닐에 덮여 있다. [사진 통영시]

지난 1월부터 임시 휴관 중인 경남 통영VR존. '통영해저탐험' VR장비가 투명 비닐에 덮여 있다. [사진 통영시]

50억원 들였는데…하루 20명도 안 와

통영시는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고용산업위기지역 문화콘텐트 사업’에 선정되자, 사업비 50억원(국비 25억원·지방비 25억원)을 들여 통영VR존을 만들었다. 통영 역사와 문화, 자연경관을 가상현실로 체험하자는 취지다. 지상 2층(연면적 630.7㎡)규모로 2020년 5월 문을 연 이 시설은 갈매기가 돼 하늘에서 통영을 내려다보는 ‘소매물도 갈매기’, ‘통영시간여행’ 등 11가지 가상현실 콘텐트로 꾸몄다.

지난 1월 임시휴관 전 경남 통영VR존 내부. 이용객이 '통영시간여행'이란 테마의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통영시]

지난 1월 임시휴관 전 경남 통영VR존 내부. 이용객이 '통영시간여행'이란 테마의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통영시]

임시휴관 중인 경남 통영VR존 내부. [사진 통영시]

임시휴관 중인 경남 통영VR존 내부. [사진 통영시]

개관 당시 시는 이곳에 연간 10만명 정도 찾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시에 따르면 통영VR존 이용객은 2020년 3575명, 2021년 4630명, 2022년 4959명이다. 운영일(3년간 784일) 기준으로 보면, 하루 평균 17명꼴이다.

동피랑엔 121만명 왔는데…'관광객 패싱'

반면 통영VR존과 가까운 주요 관광지엔 인파가 몰렸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벽화마을로 유명한 동피랑 마을을 찾은 방문객 수는 121만831명이다. 같은 기간 서피랑 마을에 8만명, 디지털 테마파크 ‘디피랑’에 17만8712명이 찾았다. 3곳 모두 통영VR존에서 직선거리로 400~650m 떨어진 곳에 있을 정도로 가깝다. 통영VR존은 관광객에게 ‘패싱’ 당한 셈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그래픽=김경진 기자

VR존 패싱, 왜?…“가격 비싼데 ‘노잼’”

통영시가 한국경제정책연구원에 의뢰한 ‘통영VR존 시설운영 개선을 위한 정밀진단’ 용역 결과에 따르면 이용객이 적은 원인 중 하나론 비싼 이용료가 꼽힌다. 이곳 요금은 성인 기준 8000원이다. 타 지역 유사 VR시설 6곳 요금은 3000원~5000원(성인)으로 통영VR존이 2배가량 비싸다.

통영VR존 11종 가상현실 콘텐트 중 하나인 '통영시간여행'. 사진 통영VR존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통영VR존 11종 가상현실 콘텐트 중 하나인 '통영시간여행'. 사진 통영VR존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지역에선 “가격은 비싼데 재미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통영VR존 인근에서 만난 김모(50대)씨는 “내용이 너무 교육적이고 통영 홍보물에 가까운 느낌”이라며 “애들도 재미없어 한다”고 했다.

지난해 9월 통영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통영관광공사 김용우 사장은 “영상이 얼마나 조잡한지 잠시 보고 나오면 눈이 아플 정도”라며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과연 저걸 눈이 아파가며 보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영관광공사는 통영VR존 활성화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운영할수록 적자…인건비도 못 뽑아 

통영VR존 연간 적자 규모는 적게는 1억317만원 많게는 1억3955만원이었다. 운영비 등으로 매년 1억4513만원~1억9099만원을 쓰는데, 입장료 수익은 4142만원~5144만원에 그쳤다. 3~4명 인건비(1억2391만원~1억5458만원)조차 자체 수익으로 충당하지 못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통영관광공사는 지난해 12월 통영VR존 운영에서 손을 뗐다. 통영시와 맺은 위·수탁 계약 기간이 끝나자, 더는 연장하지 않았다. 통영시는 ▶이용료 조정 ▶비·성수기 탄력운영 ▶운영 기기 조정(11종→3종) 등 단기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다. 통영VR존은 국비 보조 시설이라 해당 정부 부처의 승인 없인 당장 폐관하기도 어렵다.

시 관계자는 “임의로 폐관 후 시설을 변경하면 국비를 반환할 수 있다”며 “존폐는 내구연한(5년)이 종료되는 2025년 이후 검토하겠다”고 했다.

지난 1월부터 임시 휴관 중인 경남 통영VR존. '조선수군 기마사법' VR장비가 투명 비닐에 덮여 있다. [사진 통영시]

지난 1월부터 임시 휴관 중인 경남 통영VR존. '조선수군 기마사법' VR장비가 투명 비닐에 덮여 있다. [사진 통영시]

지난 1월부터 임시 휴관 중인 경남 통영VR존. 'VR 한산대첩' VR장비가 투명 비닐에 덮여 있다. [사진 통영시]

지난 1월부터 임시 휴관 중인 경남 통영VR존. 'VR 한산대첩' VR장비가 투명 비닐에 덮여 있다. [사진 통영시]

“국비 주니 일단 신청? 안 돼!”…의회 조례 제정

이와 관련, 통영시의회는 최근 ‘공모사업 관리 조례’를 만들었다. 3억원 이상 국·도비 지원사업 등은 지자체가 미리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해당 조례를 대표 발의한 조필규 의원은 “무분별한 공모사업은 사후 관리 등에 더 많은 과제를 남긴다”고 했다.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이사)는 “단체장들은 재선·3선을 하려고 임기 내에 뭔가 특색 있는 사업을 해 주민들에게 강한 인식을 남겨야 한단 압박감에 과욕을 부리기 쉽다”며 “또 지방재정이 열악하다 보니, 국비 보조 사업이 있으면 타당성을 면밀히 따지기보단 일단 덜컥 예산부터 타내려고 해 이런 일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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