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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차 가수라도 무대 공포 있단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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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22면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양희은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데뷔 53년차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낯익은 저자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일상을 소재로 삶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담은 글들도 좋지만, 아무래도 가수로서의 얘기에 눈이 간다. 스무살 전후에 통기타를 들고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기성 문화에 반기를 든 청년 문화의 아이콘 같았다.

한데 청바지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단다. “가난한 햇병아리 가수”는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일을 하러 가야 했던 터. 책가방에 기타까지 들고 만원 버스를 타려니, 그 무렵 유행하던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는 언감생심. 작업복 같은 옷을 입은 그와 같은 무대에 설 수 없다고 했던 원로 가수들도 있었단다. 저자는 그 완고함을 탓하는 대신 “드레스를 갖춰 입는 게 무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며 “무대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짚어낸다.

책에는 패티김, 이미자, 윤복희는 물론이고 전후 미8군 무대에서 일했던 여러 여성 가수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뚜렷이 담았다. 물자가 넉넉지 않던 시절 드레스며 장갑까지 직접 만들었던, “바느질을 못 하면 가수를 할 수도 없었던 시절”을 겪은 선배들이다. 선배들에게 예쁨 받은 기억도 들려준다.

책 제목처럼 ‘그럴 수 있어’라는 태도는 자신의 노래, 정확히 말하면 그 반향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 이슬’이 거리 시위에서 불려지는 걸 처음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이렇게 썼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게 노래의 사회성이구나’ 깨달아졌다. 노래는 되불러주는 이의 것이구나. 노래를 만든 사람, 처음 부른 가수의 것이 아니구나.” 어쩌면 이 노래만 그런 것 같진 않다. 장사 안될 노래란 타박을 들었다는 ‘한계령’이, 미국에서 전업주부로 지내며 답답함에 목 놓아 울다 만들었다는 앨범 ‘1991, 양희은’이 불러낸 반향은 익히 아는 대로다.

현재형 이야기에 70여 년 인생에서, 음악 안팎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가 담담하게 전해지는 게 인상적이다. 자녀들을 두고 이혼한 뒤 서른아홉에 세상 떠난 아버지를 뒤늦게 현충원에 모신 얘기도 그렇다. 그렇다고 저자를 만사 달관한 사람으로 여기면 착각이자 실례일 듯싶다. 그는 지금도, 아니 놀랍게도 예나 지금이나 “무대 공포”가 심한 가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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