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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범 부추겼다" 모범수 되어 가석방된 美소년범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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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부임 이후 첫 연출작으로 선택한 연극 '겟팅아웃'이 6월 23일부터 7월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부임 이후 첫 연출작으로 선택한 연극 '겟팅아웃'이 6월 23일부터 7월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나는 알린이야. 알리였으면 벌써 널 죽였어.”
이렇게 말하는 알린(이경미)의 목소리에 소년범 알리(유유진) 시절의 난폭함이 가시처럼 돋쳐있다. 모범수가 되어 8년 만에 가석방돼 알린으로 개명한 그는 알리로 불렸던 과거의 자신을 도려내고만 싶다. 그러나 사회는 알린이든, 알리든 돌아온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
퓰리처상 수상 극작가 마샤 노먼의 처녀작 ‘겟팅아웃’이 고선웅 서울시극단장 연출로 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푸르른 날에’ 등을 연출한 고 연출이 세종문화회관 전속 서울시극단장에 부임한 후 첫 연출작이다.

고선웅 서울시극단장 첫 연출 #연극 '겟팅아웃' 9일까지

70년대 美소년범 현실…韓"범죄자 낙인이 재범률 높여"

기자였던 노먼이 1977년 원작에서 당시 미국 켄터키 주립병원의 젊은 신경증 환자들과 생활한 경험을 녹여낸, 갓 출소한 소년범이 겪는 하룻 동안의 힘겨운 사회 복귀극이 56년 뒤 지금의 한국 관객에게 공감가게 다가온다. 국내 청소년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과 대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도 1년 내 재범을 저지른 청소년이 90.4%에 달한다. 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이들의 재범을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극 '겟팅아웃'에서 8년만에 가석방된 알린 역(왼쪽부터)은 연극 '오만과 편견' '해롤드와 모드'의 배우 이경미가, 과거 '알리' 역은 연극 '아마데우스'로 주목받은 배우 유유진이 맡았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연극 '겟팅아웃'에서 8년만에 가석방된 알린 역(왼쪽부터)은 연극 '오만과 편견' '해롤드와 모드'의 배우 이경미가, 과거 '알리' 역은 연극 '아마데우스'로 주목받은 배우 유유진이 맡았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연극 '겟팅아웃' 무대는 2층의 교도소와 1층의 아파트로 나뉜 2층 구조 세트로 이뤄져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연극 '겟팅아웃' 무대는 2층의 교도소와 1층의 아파트로 나뉜 2층 구조 세트로 이뤄져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겟팅아웃’ 역시 출소한 소년범이 사회의 외면 속에 다시 범죄로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을 그린다. 서로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알린과 알리는 동일 인물의 현재와 과거 모습이다. 알린은 매춘 여성의 딸로 태어나 빈민가에서 아동 학대 속에 자랐다. 절도·유괴·탈옥을 거쳐 살인까지 저질렀다. 형제 자매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를 통해 교화한 그는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감옥에서 낳아 생이별한 아이를 되찾고 평범한 엄마로 살려는 그의 꿈은 출소 첫날부터 좌절된다.

교도소 시절에 짓눌린 현실, 2층 무대로 구현

고향에 돌아온 알린이 정착한 낡은 아파트(1층)가 8년 간 수감된 교도소의 쇠창살(2층)에 짓눌린 형태의 2층 구조 무대는 그의 내면을 반영한다. 현실은 과거란 이름의 보이지 않는 쇠창살에 갇혀 있다. 아버지의 학대를 받는 어릴 적 자신을 외면한 엄마, 자신의 몸을 노리고 쫓아온 간수, 포주인 남자친구의 유혹을 마주할 때마다, 무의식 속에 억눌려있던 알리의 슬픔과 분노가 과거의 망령처럼 수시로 알린의 현재를 침범한다. 최근 4시즌째 공연한 뮤지컬 ‘광주’에서 광주민주화항쟁의 여러 장면을 한 무대에서 교차해 의미를 극대화한 고 연출의 스타일이 다시 빛을 발했다.

새로운 삶을 살려는 알린을 포주인 남자친구, 다른 꿍꿍이를 품은 교도관 등이 찾아온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새로운 삶을 살려는 알린을 포주인 남자친구, 다른 꿍꿍이를 품은 교도관 등이 찾아온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알린과 알리 역의 이경미‧유유진은 비슷한 외모, 목소리까지 염두에 두고 캐스팅했다. 서로 평행선을 그리다 한 점으로 만나게 되는 2인 1역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알린은 출소자인 이웃의 응원과 지지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온전히 껴안은 후에야 원했던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연극은 주인공의 과거 범죄 피해자나 그가 치러야 할 죗값 대신 사회에 받아 들여지지 못하는 그의 처지에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한다.

고선웅 "과거에 발목잡힌 타인 포용했으면" 

세종문화회관이 고선웅 서울시극단장 부임 후 첫 연출작인 연극 '겟팅아웃'의 개막(6월 23일~7월 9일) 전 지난달 8일 이 공연의 연습 현장을 공개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이 고선웅 서울시극단장 부임 후 첫 연출작인 연극 '겟팅아웃'의 개막(6월 23일~7월 9일) 전 지난달 8일 이 공연의 연습 현장을 공개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고 연출은 “공립극단에 부임한 뒤 시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 의식이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극을 보는 재미에 충실한 작품을 골랐다”고 작품 선정 배경을 밝혔다. 또 “70년대 희곡이지만, 과거의 과오가 끝까지 용서 받지 못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동시대에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다”면서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를 편들어주는 것에 조심스럽다. 과거에 발목 잡힌 타인을 관대하게 포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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