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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즈(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직폭력배,룸살롱,떡값,칼부림은 우리 사회의 범죄무대를 꾸미는 대표적인 장치들이다. 바로 그 속에 근엄한 판검사가 한몫 끼어들었다는 것은 마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무대는 한 지방도시의 무슨 룸살롱. 여기에 판검사들이 손수 출연,조직폭력배와 어울려 질탕하게 술을 마셨다. 이들은 나중에 폭력배들끼리 주먹과 흉기를 휘두르는 활극까지 감상했다. 그리고 시도때도 아닌 떡값을 얼마씩 받았다.
코미디는 제2막이 또 있다. 이 사실을 쉬쉬하고 덮어 두려던 일이다. 결국 그 모든 사실들이 법정에서 한 피고에 의해 폭로되는 제3막의 극적인 장면으로 대단원을 이룬다.
바로 그 희극 같은 일이 연극 아닌 우리의 현실 속에 연출된 실연극을 보면서 관객들은 우습지도 않다. 그동안 『강력범 일제단속』이니,『범죄와의 전쟁』이니 하고 법석을 부린 정부당국은 또 얼마나 머쓱할지,남이 생각하기에도 민망하다.
판·검사,변호사,관리,교육자,종교인,언론인과 같은 직업은 서양에선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는다. 프러페션이라고 한다. 이들도 물론 다른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월급 받고 똑같이 고용살이를 하지만 비지니스나 트레이드와는 구별한다. 좀 고상한 일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고상한 일엔 도덕적인 의무가 따른다.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가 그것이다. 「고귀한 의무」라는 뜻이다.
가령 변호사의 경우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지키려면 최소한 7가지 소질이 있어야 한다. 영국의 유명한 판사 E A 파리는 그것을 「7개의 빛」이라고 했다. 정직,용기,근면,기지,웅변,판단력,우의.
프러페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즈엔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공봉사의 정신. 둘째는 상업적 성공주의의 배척,셋째는 신뢰의 유지.
프러페션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속으로 소(우)가 웃을 소리라고 냉소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프러페션이고 뭐고 요즘은 염치불구,체면불구,「이문 우선주의」 세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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