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 잃은 거인 군살빼기|탈 냉전시대의 미 대외정책과 역할 변화-CI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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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동서냉전의 배후 주역 역할을 해왔던 미 중앙정보국 (CIA)이 시대조류에 맞춰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국민의 원성 대상이던 소련의 국가안보위원회(KGB)가 세월이 바뀜에 따라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내정치에 개입 없이 해외에만 치중했던 미 CIA는 그 필요성에 대한 광범한 지지를 확보한 가운데 화해시대에 맞는 새 역할을 찾고있다.

<국내정치 개입 없어>
그뿐 아니라 불과 1, 2년 전만 하더라도 치열한 정보경쟁을 벌였던 소련의 KGB와도 비공식적이나마 협조관계를 모색하고 있어 CIA와 KGB간의 대결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가을 미 캘리포니아 주 샌타모니카 소재 랜드연구소에서는 전직이기는 하나 KGB 출신과 CIA출신 민간대표간에 미소 정보기관이 테러리즘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는 휴대용 무기나 폭탄이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에서부터 중동의 인질문제에 까지 협조 가능한 30여개 항목을 추려내기도 했다.
특히 페르시아만 사태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미소는 이라크에 잡혀있는 인질, 이라크의 전력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소간 대립의 부산물로 탄생했던 CIA가 이제 와서는 공작의 대상을 잃어버릴 정도로 되어 버린 것이다.
일부에서는 CIA가 이제는 "적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전면 재검토해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CIA의 방향 전환에 대한 여러 대안이 여기저기서 제시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라는 개념부터 달라진 상황에서 CIA의 목표·관심·행태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소련에 치중했던 활동대상도 다변화해 중동·동남아 등 분쟁 가능지역으로 활동범위를 넓히고 군사정보뿐만 아니라 마약·테러·무기확산 등의 분야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구의 온실효과에 대한 대응, 핵의 폐기물처리 등 환경문제까지 신경 써야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미 CIA의 웹스터국장은 이러한 요구에 부용하기 위해 군사 정보수집과 보호 일변도에서 경제정보의 중요성도 강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부시 대통령도 이러한 우선 순위 변경에 대해 지난번 공식 승인했다.

<마약 등 대상 전환>
즉 앞으로 미 CIA가 치중할 목표는 미국의 경제나 기술이 계속 경쟁력을 갖도록 보호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다른 국가의 정보기관이나 회사들이 미국 기업 정보를 빼내 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CIA관계자들은 최근 프랑스 정보기관이 프랑스 국영 컴퓨터 회사를 위해 유럽주재 미국 IBM·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등 유명 전자회사 사원 명단을 확보해 간 것도 이러한 경제정보를 빼내기 위한 공작의 일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미 CIA가 개인기업을 위해 그런 활동을 벌이는 것이 과연 타당 하느냐는 법적인 문제부터 미국이 그러한 정보활동으로 과연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느냐는 의문까지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 CIA의 활동 행태도 지나친 비밀공작에 의존하기 보다 공개활동에 치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문창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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