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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데도 요령 있다" 韓기업문화 바꾼 그녀, 워킹맘 응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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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회장이 지난 20일 캐나다에서 국제 기업지배구조 네트워크(ICGN) 대상을 받고 있다. 이복실 회장 제공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회장이 지난 20일 캐나다에서 국제 기업지배구조 네트워크(ICGN) 대상을 받고 있다. 이복실 회장 제공

"딸들에겐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하고 싶어서 이 악물고 버텼지요."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회장의 말이다. 버틴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는 지난 20일 세계적 경제 분야 단체인 국제 기업지배구조 네트워크(ICGN)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가 이끄는 비정부기구(NGO), WCD가 한국에서 여성의 기업 임원 진출에 가시적 성과를 도출했음을 인정받았다.

ICGN은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세계 각국의 연기금, 기관투자자, 투자자협회, 주주 서비스 기관 등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이들이 모여 기업지배구조 다양성 등을 감시하며 기준에 맞지 않는 기업의 경우 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자금 흐름에도 실질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런 ICGN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성과를 낸 이들을 발굴해 수여하는 상을 이복실 회장이 WCD를 대표해 받은 것. 한국 단체로선 최초다. 캐나다에서 열린 시상식에 다녀온 그를 만났다.

수상 소감부터 들려달라.  
"한국이 기업지배구조에 있어선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이번 상으로 국위선양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여성이사 의무화를 위해 WCD 모든 구성원이 힘을 합한 결과인데, 핵심적 성과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기업은 이사회를 어느 특정 성만으로 구성할 수 없다'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법제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회, 특히 여러 남성 의원들의 적극적 협조가 있었다."  
실제 성과는.  
"법 개정 이전 이사회 여성 비율이 3%였다가 이젠 8%로 5%p가 뛰었다. 단단했던 콘크리트 벽에 균열이 가고 있는 것이다. 비상장 기업 중에서도 롯데카드처럼 여성 이사를 선임하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시상식에서 한 캐나다 경제인이 '우리 사외이사 중 여성이 34%'라길래 속으론 참 많다고 부러웠는데, 그분이 바로 '50%는 돼야 정상인데 너무 적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역차별이라는 주장은 없나.  
"이제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트렌드인데, 그중 핵심이 다양성 등으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여성을 우대해달라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여성에게 닫혀있던 문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남녀가 아닌, 사람으로 일하고 평가하자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2013년 청와대에서 여성가족부 차관 임명장을 받고 있는 이복실 회장. [청와대사진기단]

박근혜 대통령에게 2013년 청와대에서 여성가족부 차관 임명장을 받고 있는 이복실 회장. [청와대사진기단]

이 회장 본인도 워킹맘었는데.
"대졸 공채의 조건이 '군필자'였던 시절 대학을 졸업했고, 직업을 구하려면 고시 외엔 길이 없었다. 그래서 행정고시를 봤고,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차관 역임)에서 보람있게 일하고 은퇴했다. 결혼하면 여성이 은퇴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지금은 먼 옛날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여성은 어딜 가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의 많은 부분이 당연하지 않다. 딸이 둘인데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은퇴 후에도 NGO에서 일하고 있다."  
워킹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이를 키우고 회사를 다닌 30년 동안 죄인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워킹맘은 직업이 두 개나 되는 거잖아'라며 위로해주더라. 애들이 아플 때 내가 회사에 있는 게 미안하고, 내가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면 나의 삶의 질도 높아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솔직히 해봤다. 하지만 버텼다. 내가 어떻게 일군 커리어인데,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쉽게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교육이 될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버티는 데도 요령이 있다. 혼자서만 끙끙대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고 조력자를 만들어야 한다."  
남성에게도 전하고픈 말은.  
"사실 양성평등에 열린 마음을 가진 남성도 많다. 어려운 게 아니다. 내 누나 또는 딸이 나처럼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된다.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강연도 많이 하는데, 다들 '여성에게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남녀 구별 없이 평가하자는 것'이라고 하면 다들 공감하더라. 다 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함께 잘 살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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