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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7년전 유언장 '400억 싸움'…태광 이호진, 누나 이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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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2021년 만기출소했지만 5년간 취업 제한이 걸려있다. 사진은 재판이 진행되던 2018년 12월의 모습. 당시 '황제보석'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뉴스1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2021년 만기출소했지만 5년간 취업 제한이 걸려있다. 사진은 재판이 진행되던 2018년 12월의 모습. 당시 '황제보석'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뉴스1

이호진(61) 전 태광그룹 회장이 옥중에서 누나 이재훈 씨(67)를 상대로 400억 원을 달라는 소송을 내 출소 1년 8개월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 손승온)는 “누나 재훈씨는 이 전 회장에게 400억원과 지연손해금(연체이자)을 지급하라”고 지난 16일 판결했다. 인지대(법원에 내야 하는 수수료)만 1억2000만원이 넘고, 재훈씨가 400억원을 이달 안에 다 지급한다 해도 연체이자로만 약 270억원을 더 줘야 한다.

검찰 수사가 쏘아올린 상속 싸움…27년 전 유언장 꺼내

400억 원은 이 전 회장이 2010년 말 재훈씨에게 ‘맡긴 것’이라 주장하는 채권의 액면 금액이다. 당시 검찰은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를 시작했다. 문제의 채권은 두 사람의 아버지이자 태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선대회장이 차명으로 갖고 있던 채권이었다. 두 사람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서로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채권을 받았다고 다퉜다.

이임용 선대회장은 27년 전 ‘딸들 빼고 아내와 아들들에게만 재산을 주되, 나머지 재산이 있으면 유언집행자인 이기화 사장(이호진 전 회장의 외삼촌, 2019년 작고) 뜻에 따라 처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96년 선대회장 사망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나머지 재산’은 10여년 뒤 드러났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 등으로 상속세 신고에서 누락된 차명 채권·주식 등이 발견됐는데, 이 전 회장이 단독으로 처분했거나 자신의 명의로 실명 전환한 것들이었다.

검찰 수사 후 7년간 이어진 재판 끝에 이 전 회장은 2019년 6월 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누나를 상대로 한 이번 소송은 그가 복역 중이던 2020년 3월 낸 것이다. 재판은 1년 반 동안 기일변경을 거듭하며 세 번밖에 열리지 않았는데, 2021년 10월 이 전 회장의 만기 출소 후 속도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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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회장은 유언에 따라 채권을 단독 상속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남매들 간 분란이나 경영권 분쟁 방지를 위해 표면적으로 내가 물려받는 재산이 다른 형제와 엇비슷해 보이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며 “아버지의 재산 중 드러난 재산은 형(이식진 전 부회장, 2004년 작고)과 반분하되, 차명 재산은 ‘나머지 재산’이란 형태로 외삼촌으로 하여금 나에게 집중시키도록 한 것”이라 주장했다. 반면 누나 재훈씨는 “그 유언은 무효이며, 채권은 동생이 맡긴 게 아니라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라 주장했다.

지난해 재계 순위 48위를 기록한 태광그룹 내에는 태광산업(섬유·석유화학), 흥국생명·흥국화재, 티캐스트(방송채널사업자), 태광CC 등이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 연합뉴스

지난해 재계 순위 48위를 기록한 태광그룹 내에는 태광산업(섬유·석유화학), 흥국생명·흥국화재, 티캐스트(방송채널사업자), 태광CC 등이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 연합뉴스

유언 무효지만, 10년 버텨 "채권 소유권 인정"

3년 넘는 심리 끝에 법원은 “유언은 무효지만, 채권은 이 전 회장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유언 내용의 결정을 유언집행자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위임하는 것은 유언의 일신전속성(一身專屬性·특정인에 귀속되고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반하므로 ‘나머지 재산’ 유언 부분은 무효”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이 상속 개시(선대회장 사망) 당시 상속 채권을 단독으로 상속받을 권리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속 개시 이후 이 전 회장이 채권을 실질적으로 점유·관리해 왔고, 다른 상속인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인 10년이 이미 지났다는 점을 들어 “유언의 효력 유무와 무관하게 이 전 회장이 채권에 대한 단독 상속인으로서 온전한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봤다. 아버지 생전에 채권을 증여받은 거란 재훈씨의 주장에 대해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이 선대회장이 사망한 지 27년이 흘렀지만, 상속재산을 둘러싼 남매간 법정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이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어느 쪽이든 2주 안에 항소장을 제출하면 항소심 재판이 시작된다.

재훈씨는 검찰 수사 후 아버지의 차명 상속재산을 알게 된 2012년에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상속권을 침해당했으니 차명 주식 등을 내게 달라”며 240억원대 소송을 낸 적이 있다. 그때도 상속 이의제기 기간이 지났다고 1심에서 패소했는데,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때까지 7년 동안 다퉜다. 당시 재훈씨 외에도 또 다른 누나, 이복 형, 조카 등도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모두 이 전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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