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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찍고 31세에 MLB 데뷔…'역수출 신화' 새로 쓰는 메릴 켈리

중앙일보

입력

메릴 켈리(35·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21일(한국시간) 현재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 다승 공동 1위다. 벌써 9승(3패)을 올리고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하면서 첫 빅리그 개인 타이틀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세부 성적도 좋다. 이닝당 출루 허용(WHIP)이 1.07로 리그 3위, 피안타율이 0.194로 리그 2위다. MLB 데뷔 5년 만에 최고의 시즌을 예약했다.

MLB 마운드에서 역투하는 메릴 켈리. AP=연합뉴스

MLB 마운드에서 역투하는 메릴 켈리. AP=연합뉴스

켈리는 KBO리그 야구팬에게도 익숙한 선수다. 2015년부터 4년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뛰었다. 빅리그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하고 한국에 왔는데, 미국으로 돌아간 뒤 MLB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했다. KBO리그 '역수출 신화'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켈리는 미국 애리조나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오직 빅리그 마운드를 꿈꾸며 야구를 했다. SK의 영입 제안을 받기 전까지는 한국에 프로야구 리그가 있는 줄도 몰랐다는 후문이다. 그는 2010년 MLB 신인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에 지명돼 그 꿈의 출발선에 섰다. 다만 입단 후 5년이 지나도록 빅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2014년 마이너리그 최상위 레벨인 트리플 A에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도 그랬다. 심신이 지친 켈리는 결국 26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 행을 택했다.

한국에서도 처음엔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는 MLB 등판 기록이 전혀 없는 무명 투수였고, 계약 총액은 35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곧 SK와 켈리 모두에게 최고의 선택으로 판명났다. 켈리는 2015년부터 4년간 총 119경기에 나가 통산 48승 32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2015년 11승을 올리며 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2016년엔 무려 200과 3분의 1이닝을 책임졌다. 2017년엔 팔꿈치 수술로 빠진 김광현 대신 에이스 역할을 했다. 2018년엔 돌아온 김광현과 힘을 합쳐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SK 시절이던 2018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 등판해 포스트시즌 첫 승을 거두고 기뻐하는 메릴 켈리. 연합뉴스

SK 시절이던 2018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 등판해 포스트시즌 첫 승을 거두고 기뻐하는 메릴 켈리. 연합뉴스

우승 목표를 이룬 켈리는 두 번째 새 출발을 결심했다. 안락한 생활이 보장된 한국에 안주하는 대신, 못다 이룬 빅리거의 꿈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SK도 켈리의 의사를 존중해 보류권을 풀어줬다. 켈리는 한국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고향 팀 애리조나와 2+2년(보장 금액 600만 달러) 계약을 했다.

2019년 4월 2일, 31세의 켈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MLB 데뷔전을 치렀다. 우여곡절 끝에 꿈을 이룬 켈리의 드라마에 미국 언론도 주목했다. 야후스포츠는 "누군가에게는 별다를 게 없는 이 하루가 켈리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가 그 하루를 보내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썼다. 켈리는 첫 등판에서 6이닝 5피안타(1피홈런) 3실점으로 첫 승을 신고한 뒤 13승으로 데뷔 시즌을 마쳤다. 2020년엔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5경기 만에 시즌을 접었지만, 2021년 다시 빅리그로 돌아와 애리조나 1선발로 자리 잡았다. 애리조나는 2년 보장 계약이 끝난 뒤에도 매년 구단 옵션을 행사해 켈리를 붙잡았다.

켈리는 지난 시즌 한 단계 더 도약했다. 33경기에서 200과 3분의 1이닝을 던져 13승 8패, 평균자책점 3.37을 기록했다. 그 결과 애리조나와 다시 2+1년 1800만 달러(2025시즌 구단 옵션 700만 달러)에 사인했다. 4년 만에 보장 금액이 정확히 세 배 뛰었다. 지난 3월에는 미국 야구대표팀에 뽑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했다. KBO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가 미국 국가대표로 나선 건 켈리가 처음이다. 그 역시 "이게 진짜 아메리칸 드림"이라며 감격했다.

지난 3월 WBC에서 일본과의 결승전 선발투수로 등판한 메릴 켈리. AP=연합뉴스

지난 3월 WBC에서 일본과의 결승전 선발투수로 등판한 메릴 켈리. AP=연합뉴스

올 시즌은 더 눈부시다.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는 켈리의 '역주행'에 현지에서도 감탄이 쏟아진다. MLB 투수 중 하위권인 구속(직구 평균 시속 148㎞)의 약점을 구위와 제구력으로 충분히 상쇄하고 있다. 지난 5월 29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삼진 10개를 잡고 승리 투수가 되자 역대 최고의 제구력 투수인 그레그 매덕스에 비견되기도 했다. 알렉스 코라 보스턴 감독은 "켈리는 '피칭'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힘 있는 구종이 득세하는 요즘 시대에 완벽한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제압한다"며 "마치 매덕스처럼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이용해 원하는 코스로 던진다. 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이라고 극찬했다.

9년 전 홀로 이역만리 한국에 와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켈리. 그 노력과 도전정신이 그를 MLB 정상급 투수의 자리로 이끌었다. 이제 켈리는 KBO리그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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