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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아픔 대변 김경득 변호사(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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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 「지문철폐」 뜸들이고 있다/대체수단 개발 핑계 “시간끌기”/민족교육 제도적 보장도 시급
재일한국인의 차별적 대우를 상징하고 있는 「지문날인」 문제가 가이후(해부) 일본 총리의 내년 1월 방한과 맞물려 협정개정 시한인 1월16일까지는 정치적 해결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문날인 거부운동이 일본내에서 벌어진 것은 지난 80년 9월 한종석씨(동경 신숙구 거주)가 지문날인을 거부함으로써 일본경찰에 고발된 것이 첫 사례.
그로부터 꼭 10년 만에 재일동포로 일본에서 태어난 2세 및 3세 10여 만 명과 앞으로 출생할 3세 이후 자손들이 지문날인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 일본내에서 갖가지 모멸과 박해를 받아온 70만 재일동포의 고통을 대변해온 변호사 김경득씨(42)의 역할은 컸다.
그 자신 지난 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외국인은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수 없다」는 국적조항에 걸려 이의 취소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투쟁 끝에 재일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변호사자격을 획득한 경력을 지녔다.
○투쟁 끝에 딴 변호사
85년 동경시내에 「우리 법률사무소」를 설립한 후 지난 5년간 재일동포의 법적·신분적 차별문제에 대해 일본 조야에 문제를 제기,이의 시정을 위해 김 변호사는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24∼25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기각료회담에서 「1,2세에도 지문날인을 폐지키로 원칙합의했다」는 보도에 대해 일단 환영하면서도 『일본측이 한국정부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한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닌가. 일본이 전후책임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자세가 아쉽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 변호사는 일본정부가 지문날인의 즉시 철폐를 약속하지 않고 『대체수단 개발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뜸을 들이고 있는 사실을 지적,『이는 시간을 끌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며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서비스를 위해 「가족단위 등록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정부는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는 이 「가족단위 등록제」를 주민기본대장법에 따라 재일동포에 시행하면 될 뿐이라는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즉시 시행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가 현 단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은 ▲지문날인 면제 ▲재입국허가기간 연장 ▲강제퇴거의 국사범 한정 등 일본정부가 약속한 재일동포의 법적지위 개선합의를 91년 신협정의 체결로 하지 않고 다만 외국인등록법·출입국관리법 등 국내법 개정으로 해결하려는 일본정부의 미온적 태도다.
이렇게 되면 지난 5월 노태우 대통령 방일때 일본 국왕과 총리·국회의장이 발언한 「과거역사에 대한 책임인정과 그에 따른 사과」를 협정에 명시,역사적 기록으로 남길 수 없게 된다고 김씨는 주장한다.
일본이 명백하게 과거를 사과해야만 전후처리가 종결되고 일본내 재일동포도 차별받지 않고 떳떳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내년 가이후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는 기대한 만큼 개선되리라고 보십니까.
『문제는 일본인들의 의식구조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전쟁과 식민지배를 참으로 반성한다면 차별문제가 일어나지 않겠지요. 지문날인 철폐에 합의했다지만 법운용에 따라 얼마든지 귀찮게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조총련계 동포가 이사한 직후 등록변경을 하지 않았다고 구속한 것도 그 하나의 예입니다.』
○제2 날인 가능성도
­지문날인에 대치할 대체수단이 왜 필요합니까.
『표면적으로는 외국인으로 동일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치안유지가 가능하다고 내걸고 있지만 결국 재일동포를 범죄인시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지요.
대체수단으로 사진촬영,모발·얼굴형태 감식,뢴트겐검사,호적제 도입 등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문제는 이들 새로운 신원확인 방법이 「또 다른 형태의 지문날인」으로 변모,문제가 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서비스상 필요에서 우리식의 주민등록대장을 만들고 있는데 이를 그대로 확대시행하면 얼마든지 즉시 지문철폐도 가능합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지요.』
­지문날인 말고도 지방공무원 채용차별,초·중·고등학교 교원채용 강사제한 등 사회생활상의 차별문제도 남아 있는데….
『사실 「지문날인」을 내건 것은 그것이 차별을 상징한다는 점 때문이지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재일동포의 역사적 존재 경위와 정주성을 인정한다면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민족교육 문제는 각료회담에서 거론도 안 됐는데 이에 대한 제도적 보장도 필요합니다. 현재 재일동포 자체의 약 90%가 일본인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민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는 10%에 불과합니다.
일본인학교에 다니고 있는 재일동포의 대부분이 일본이름을 사용,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전후 창씨개명,황국신민 서사를 제창케 한 민족동화정책의 연장입니다.
일본사람들은 걸핏하면 국제화를 내세우고 있는데 진정한 국제화가 되려면 소수 민족에 대한 교육이 되지 않고는 허구에 불과합니다.』
○남북이견 일서 악용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도 앞으로 1,2년 안에 이루어질 전망인데 북한과의 법적지위협정도 따로 맺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남북한이 이 문제를 두고 수뇌회담을 가질 것을 일찍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민단과 조총련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로는 일본정부에 계속 이용만 당할 뿐입니다.
민단과 조총련이 상설기구를 만들어 이 문제에 대한 이해대립을 조정하고 공동방침을 세워야 재일동포의 법적지위도 함께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조총련측 안은 공무원채용 교원채용 문제에 대해 일본의 동화정책에 말려든다는 이유로 한국정부와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참정권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일본정부가 남북 양측의 눈치만 살피고 소극적이 되는 것이지요.』
­내년 1월16일이면 한일간의 법적지위협정도 개정돼야 할텐데….
『일본정부는 협정에 손대지 않고 국내법 개정만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것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의식,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속셈이지요. 협정을 맺으면 외교문서이기 때문에 나중에 법개정하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김 변호사는 내년 새로운 협정체결에 대비,그가 개인적으로 만든 「91년 협정안」을 준비해놓고 있다.
이 협정안은 서두에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민족에의 동화압력 및 민족차별에서 해방되어야 할 필요」를 강조하는 한편 「한민족을 유지,일본사회에서 일본민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법적·사회적 제도를 만드는 것이 식민지 지배를 한 일본국가의 책무」라고 명시하고 있다.【동경=방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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