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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44) "죽어도 배은망덕한 일은 못하겠소" 결국 형주를 잃은 유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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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이 크게 패하자 조조는 5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제갈량도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올 것을 알았습니다. 유비가 걱정하며 제갈량에게 계책을 물었습니다.

조조에게 미움을 받아 멸문지화를 당하는 공융.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에게 미움을 받아 멸문지화를 당하는 공융. 출처=예슝(葉雄) 화백

신야는 작은 현이라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요즘 유표의 병이 위독하다니 이런 기회를 이용해 형주를 빼앗아 근거지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어떻게든 조조를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의 말은 매우 훌륭하오. 하지만 나는 그분께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어떻게 차마 빼앗을 수가 있겠소?

지금 빼앗지 않으면 후회해도 늦을 것입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배은망덕한 일은 차마 못 하겠소.

태중대부 공융은 조조가 유비를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말렸습니다.

유비와 유표는 모두 한황실의 종친이니 가볍게 정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손권은 여섯 개의 군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큰 강이 막고 있어 손에 넣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승상께서 이런 의롭지 못한 군사를 일으키려 하시니 천하의 신망을 잃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유비, 유표, 손권은 모두 역적들인데 어떻게 토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

조조는 공융을 호통쳐 물리치고 다시 간하는 자는 목을 치겠다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공융은 ‘지극히 어질지 못한 사람이 지극히 어진 사람을 치려 한다’고 탄식했습니다. 독백조의 한탄이 반대파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사대부(御史大夫) 치려의 문객(門客)이 공융의 말을 듣고 그에게 전했습니다. 치려는 공융에게 늘 경멸 당했기 때문에 원한이 깊었습니다. 즉시 승상부로 달려가 조조에게 알렸습니다. 한술 더 떠서 평소 공융은 공자에, 예형은 안회에 비교하며 승상을 비꼬았다고 비방했습니다. 조조는 이를 빌미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공융과 어린 두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나관중 본에는 치려의 비방이 한 가지 더 나옵니다. 어떤 비방인지 한번 볼까요.

그러나 이런 것들이야 다 논할 나위가 못 됩니다. 그런데 공융은 유비, 유표와 사이가 아주 두터워 늘 편지가 오가고 또 손권을 부추겨 조정을 비방하게 하면서 가만히 소식을 통합니다. 이로써 그가 대역무도함을 알 수 있습니다.

치려의 비방이 이에 이르자 조조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종강은 유비의 모습을 슬쩍 감춤으로써 조조의 사악함이 더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서 조조가 공융을 죽인 장면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공융.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공융. 출처=예슝(葉雄) 화백

‘공융은 재능이 대단하고 명성도 높아서 그가 칭찬을 하거나 비판을 가하면 천하가 그 말을 믿었다. 이래서 조조는 그를 매우 버거워하며 싫어했다. 간웅은 반드시 버거운 상대를 없애버려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왕(魏王)이라고 칭하고 구석(九錫)을 덧붙이는 따위의 일은 공융이 죽은 다음에나 할 수 있었다.’

한편, 형주의 유표는 자신의 병세가 위중해지자 유비를 불렀습니다. 두 아들을 부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표는 자식들이 재주가 없어 형주를 지키지 못할 것 같으니 유비가 형주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유비는 조카들을 도울 뿐 다른 뜻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이때 조조군이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날아옵니다. 유비는 곧장 신야로 달려가고, 유표는 놀란 중에 유언장을 썼습니다.

‘유비는 장자 유기를 보좌해 형주의 주인이 되게 하라.’

채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는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자신의 친아들인 유종이 승계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채부인은 모든 궁문을 닫아걸고 채모와 장윤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습니다. 유기가 강하에서 부친의 병세가 위독함을 알고 병문안을 왔습니다. 하지만 채모가 막아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유기는 부친을 뵙지 못하고 돌아가고, 유표는 아들을 기다리다 끝내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제 유표 집안도 망하는 것 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도 유표를 탄식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지난 날 듣기를 원씨는 하북을 차지하고 昔聞袁氏居河朔
유표 또한 형주를 주름잡았다고 하였지 又見劉君覇漢陽
모두들 암탉이 울어 집안에 폐를 끼치니 總爲牝晨致家累
가련쿠나. 오래지 않아 모두 망하고 말았네 可憐不久盡消亡

채부인은 채모, 장윤과 상의해 둘째인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삼는다는 가짜 유언장을 만들었습니다. 유종의 나이 14살이었습니다. 유종은 나이에 비해 총명했습니다. 작금의 형세에 대해 형님과 숙부인 유비가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물을 것이 걱정됐습니다. 이규가 바른말을 하다가 채모에게 죽었습니다. 형주의 일을 정리할 무렵,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유종은 괴월과 채모를 불러 상의했습니다. 동조연(東曹掾) 부손이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진언했습니다. 어린 유종이 호통을 쳤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아버님의 기업을 물려받은 뒤 아직 자리도 잡지 못했는데 어찌 바로 남에게 버리겠소?

괴월도 부손의 말이 타당함을 설파하자, 유종은 하루아침에 선친의 기업을 버렸을 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이때, 유표의 상빈(上賓)으로 있던 왕찬이 나섰습니다.

조조는 군사도 많고 장수들도 용맹한 데다가 지략이 뛰어납니다. 여포를 하비에서 잡았고, 원소를 관도에서 꺾었으며, 유비를 농우로 쫓고, 오환을 백등에서 무찌르는 등 쓸어내고 평정한 것이 이루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이제 대군을 이끌고 형양으로 남하한다면 그 형세는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부손과 괴월의 계책이 바로 훌륭한 방책입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후회를 부르면 안 됩니다.

죽림칠현의 한 명인 왕찬. 출처=예슝(葉雄) 화백

죽림칠현의 한 명인 왕찬.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종은 왕찬의 말을 듣고 생각을 굳힙니다. 모용강은 이 부분에서 문사(文士)들을 두 가지 부류로 평했습니다.

‘흔히들 “문인이란 것들은 입으로 까발리기만 했지 본받을만한 행동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채옹 같은 문사가 동탁의 뒤나 닦고 왕찬 같은 문사가 조조에게 항복이나 권하는 것만 보아도 그 말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융과 예형이 서로 칭찬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덕행이 사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두 사람의 올곧은 지절(志節)은 실로 엄정했기 때문에 영웅의 풍모를 거스른 것이다. 그렇다면 “문인들에게는 본받을만한 행동거지가 없다”는 말은 이 두 사람에 의해 해명되지 않겠는가?’

결국 유종은 가짜 유언장으로 형주를 이어받자마자 조조에게 냉큼 바치는 운명이 됐습니다. 송충을 비밀리에 조조의 군영에 보내 항복하는 글을 바쳤습니다. 조조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형주를 차지하게 되자 크게 기뻤습니다.

송충이 되돌아오다가 관우에게 붙잡혔습니다. 유비는 형주가 항복한다는 사실을 알고 통곡했습니다. 제갈량이 형주를 차지하라고 했던 말이 송곳처럼 가슴에 박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차는 이미 떠났고, 유비는 태연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의(仁義)’를 내세웠기에 눈물은 보일지언정 노여움과 사나움은 깊숙이 감춰야만 했습니다.

유비는 일단 번성으로 가서 조조군에 대항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백성이 유비를 따라나섰습니다. 유비는 멀리 내다보며 속으로 크게 안도했을 것입니다. 제갈량은 관우와 장비, 조운 등에게 계략을 알려주고 조인이 이끄는 조조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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