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제갈 촌놈’에게 조인이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통이 터졌습니다. 조조는 대군을 8로(路)로 나눠 일제히 번성(樊城)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엽이 ‘민심부터 얻어야 한다’고 간언합니다. 아울러 먼저 유비에게 사람을 보내 항복을 권유함으로써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싸움은 그다음에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조조는 그의 말을 따라 서서를 사자로 보냈습니다.
유비는 제갈량과 함께 반갑게 서서를 맞이하고 옛정을 아쉬워했습니다. 조조의 사자로 항복을 권유하러 온 서서가 오히려 유비에게 조조의 사정을 알렸습니다.
조조가 저를 사군께 보내 항복을 권하는 것은 바로 민심을 사기 위함입니다. 지금 저들은 8로로 군사를 나눠 백하를 메우고 전진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마 번성은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속히 방책을 세우십시오.
서서는 조조의 진영으로 돌아와 유비가 항복할 뜻이 없음을 알렸습니다. 드디어 조조의 진군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양양성으로 갈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걱정하며 말합니다.
지금까지 따라오는 백성을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어찌 차마 버리겠소?
사람을 시켜 백성들에게 따라가고 싶은 사람은 함께 가고 따라가기 싫은 사람은 남으라고 두루 알리십시오.
우리는 죽더라도 따라가겠습니다.
많은 백성이 즉시 따라나섰습니다. 수많은 남녀노소가 모여들어 강을 건넜습니다. 강가에는 서로의 식솔을 찾는 울부짖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유비는 아픈 마음을 진정시키며 양양성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채모와 장윤이 지키며 화살을 쏘아대자 유비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성안에 있던 위연이 채모와 장윤을 꾸짖으며 유비 일행을 위해 적교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문빙이 나서서 위연을 막아섰습니다. 유비는 양쪽이 서로 죽이고 아수라장이 되자 강릉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혼란을 틈타 양양성의 백성들도 유비를 따라나섰습니다.

백성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자 울부짖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를 따르는 백성의 수가 10여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수레와 짐차는 물론 물건들을 이고 지고 맨 채로 따라나선 사람들의 행렬이 엄청났습니다. 초계병이 달려와 조조의 대군이 이미 바짝 뒤쫓아 왔음을 알렸습니다. 여러 장수가 급박하게 유비에게 간청합니다.
강릉은 요충지이니 충분히 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수만 명의 백성과 한 덩어리가 되어 하루에 10여 리밖에 못 가고 있으니 이렇게 가다가 언제 강릉에 닿겠습니까? 더구나 만약 조조의 군사라도 들이닥치면 어떻게 맞아 싸우겠습니까? 잠시 백성들을 버리고 먼저 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제 백성들이 나를 따르고 있는데 어떻게 버리느냐!
울부짖는 유비의 말에 백성들도 울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민심은 이제 완전히 유비의 편이 되었고 유비는 드디어 정치적으로 한황실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후세까지도 기억되었습니다.
위험에 빠져도 어진 마음은 백성을 위로하고 臨難仁心存百姓
배에 올라 눈물뿌리며 삼군을 출동시켰네 登舟揮淚動三軍
지금도 양강 어귀에서는 위령제를 지내며 至今憑弔襄江口
동네 어른들은 여전히 유비를 기억하고 있다네 父老猶然憶使君
조조는 항복하러 온 채모와 장윤에게 수군지휘권을 줬습니다. 아울러 유종이 계속해서 형주를 다스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좋은 말로 다독였습니다. 다음 날, 조조는 형주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인사가 끝나자 조조는 유종의 수하인 괴월을 불렀습니다.
나는 형주를 얻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대를 얻어서 기쁘오.
조조는 괴월을 강릉태수로 삼았습니다. 유종은 청주자사에 임명해 즉시 떠날 것을 명령했습니다. 유종이 매우 놀라며 사양하자 조조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유종은 어쩔 수 없이 모친인 채부인, 장수 왕위와 함께 청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유종 일행은 청주에 도착할 수 없었습니다. 조조의 명령을 받은 우금에게 피살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채부인은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재촉한 꼴이 되었고, 부손과 괴월, 왕찬은 주인을 바꾸어 영화(榮華)를 그대로 누렸습니다.
한편, 유비는 하루 10리밖에 못 가며 당양(當陽)에 이르렀습니다. 초겨울이라 날씨도 쌀쌀했습니다. 한밤중에 조조의 2천여 정예병이 들이닥쳤습니다. 유비는 싸우며 달아나기를 거듭했습니다. 장비의 보호를 받으며 도망치다 보니 날이 밝았습니다. 수하를 따라온 사람도 겨우 백여 명뿐이었습니다. 백성과 가족은 물론 미축, 미방, 간옹, 조자룡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미방이 화살을 맞은 채 도망 와서 유비에게 조자룡의 소식을 전합니다.
조자룡이 배반하여 조조 쪽으로 갔습니다.
조자룡은 나와 오랫동안 뜻을 같이했는데 어찌 배반하겠느냐? 그가 갔다면 반드시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는 기필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조자룡은 유비의 두 부인과 아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조군과 싸우다가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조자룡은 이들을 찾기 위해 싸움터인 장판파(長坂坡)로 달려갔습니다. 감부인을 찾고 미축을 구해서 안전하게 유비에게로 보냈습니다. 다시 적진으로 뛰어들어 하후은을 죽이고 조조의 청홍검(靑虹劍)을 빼앗았습니다. 드디어 다친 채 울고 있는 미부인을 찾아냈습니다. 미부인은 조자룡을 보자 아두를 건네며 부탁합니다.

아두를 살려낸 미부인. 출처=예슝(葉雄) 화백
첩이 장군을 만나다니 아두가 살아날 명인 것 같습니다. 장군께서는 부디 어여삐 살펴주십시오. 이 아이 아버지가 반평생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느라 한 점 혈육밖에 못 두었습니다. 장군께서 이 아이를 보호해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해 주신다면 첩은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미부인은 조자룡에게 재삼 부탁하고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모종강도 미부인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서씨는 죽지 않고 남편의 원수를 갚았고, 미씨는 죽음으로써 남편의 후사(後嗣)를 살렸으니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아내였다. 오부인은 죽기에 앞서 아들을 어진 신하에게 부탁했고, 미부인은 죽기에 앞서 아들을 용맹한 장수에게 부탁했으니 역시 모두 훌륭한 어머니였다. 그러나 죽는 것이 죽지 않는 것보다 어렵고, 난리 속에서 아들을 부탁하는 것이 평상시에 아들을 부탁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그러므로 미부인은 동오(東吳)의 두 부인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고 하겠다.’

조조군의 포위를 똟고 아두를 구해내는 조자룡.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자룡은 토담으로 우물을 메우고 아두를 품에 안은 채 종횡무진으로 조조군의 포위를 헤쳐 나갔습니다. 조조가 이 모습을 보고는 조자룡을 부하로 삼고 싶었습니다. 각 진영에 “반드시 사로잡으라.”는 긴급명령을 하달했습니다. 그 덕분에 조자룡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조자룡은 조조군의 장수 50여 명을 무찌르며 장판파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후세 사람들도 조자룡의 무용(武勇)을 치하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전포에 핏자국 넘쳐 갑옷까지 붉게 스며드니 血染征袍透甲紅
당양에서 누가 감히 그와 대적하겠는가. 當陽誰敢與爭鋒
예로부터 적진 뚫고 주인을 구한 이는 古來衝陳扶危主
오직 상산의 조자룡뿐이었네. 只有常山趙子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