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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기업가 출신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영광만큼 짙었던 ‘스캔들’ 그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12일(현지시간) 별세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해 10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접견 차 로마 퀴리날레 궁전을 방문해 손을 흔드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별세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해 10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접견 차 로마 퀴리날레 궁전을 방문해 손을 흔드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전후 이탈리아 최장수(9년2개월)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만성 골수 백혈병과 이에 따른 폐 감염으로 1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6세.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트위터에 “많은 사람이 그를 사랑했고, 많은 사람이 그를 미워했다”고 그의 생을 요약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포퓰리스트였지만, 각종 스캔들로 가장 손가락질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기도 했다.

1936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1960년대 경제 호황기에 부동산 매매와 주택 개발을 해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이렇게 형성한 자본을 바탕으로 1970~80년대 미디어 산업에 진출하고 채널 수를 늘려나갔다. 당시 기민당, 사회당, 공산당이 운영하는 공영방송 RAI가 내보내는 프로그램은 고루했다. 반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설립한 민영방송은 성적인 자극이 가득한 프로그램과 미국식 드라마 등을 송출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때 미디어의 힘을 확인하고 1978년 이탈리아 최대 미디어 그룹 메디아셋을 설립해 미디어 재벌이 된다. 로마 루이스 대학 지오반니 오르시나 교수는 “1980년대 베를루스코니의 상업 방송은 이탈리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현대화시켰다”고 설명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축구팀 AC 밀란도 인수해 운영했다. 당시 AC밀란은 유벤투스에 밀리는 팀이었는데, 인수 이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도 달성하며 고인의 이탈리아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미디어 재벌로서 기반을 발판으로 1993년 정계 진출을 위해 전진 이탈리아(FI·Forza Italia)를 창당한다. 당의 이름은 그가 소유했던 축구팀 AC 밀란의 응원가 제목이었다.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1994~2011년 사이 총리를 세 차례 지냈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공직 경험 없이 총리에 오른 건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또한 9년 2개월간 총리를 지내며 전후 최장기 총리 재임 기록도 갖고 있다.

그러나 총리 기간 온갖 성 추문, 언론 장악, 마피아 커넥션 등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2010년 자신의 호화 별장에 미성년 여성들을 불러들여 난잡한 ‘섹스 파티’를 벌인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2013년에는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그런데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019년 공직진출 금지 족쇄가 풀리자마자 재기에 도전해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지난해 9월 조기 총선에서 10년 만에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그러나 각종 부패 이력과 재임 중 경제실정, 그리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해 내각에 참여하진 못했다.

그가 킹메이커로 불리며 이탈리아 정치를 좌지우지한 건 높은 대중적 인기 때문이었다. 미국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스틸은 그를 “최초의 진정한 포스트모던 정치인”이라고 정의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스틸은 “미디어+돈+유명인=권력=베를루스코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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