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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아름다운 너무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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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30면

아름다운 너무나
박라연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창비 2018)

닳아서 떨어지다라는 의미의 해어지다. 이별을 맞아 서로 흩어진다는 뜻의 헤어지다. 이 두 낱말은 발음만큼이나 닮아 있습니다. 내가 가진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 안타깝고 허망한 것. 속절없는 것. 해 뜨고 다시 해 지는, 시간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것. 한 시절 스스로를 남루하지 않도록 해준 눈부신 순간들과 영영 멀어지는 것. 물론 이밖에도 또 다른 닮음이 있습니다. 해어졌다고 혹은 헤어졌다고 해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해어진 것들을 깁고 헤어진 누군가를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시간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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