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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빛과 그림자/경찰청 발족 앞두고 추적한 실태와 문제점: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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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주에 2∼3일은 “밤샘”/걸핏하면 “비상” 아예 귀가포기/손모자라 비번날 근무도 예사/교통경관은 매연속 매일 20㎞이상 걸어다니는 형편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늘 웃으며 지내세요.』
밤늦게 서장실에 앉아 낮에 배달된 크리스마스 카드를 무심코 정리하던 서울 강서경찰서장 한관민 총경은 낯익은 글씨와 이름에 흠칫 놀랐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부인이 보낸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연말연시 방범비상령이다 뭐다해서 집에 못간지가 벌써 20일이 넘은 셈이었다.
87년을 사흘 남긴 세모의 흥청거림과는 대조적으로 순간 한총경의 마음은 착잡하게 가라 앉았다.
계급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경찰관이 며칠씩 집에 못들어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5공때는 더욱 빈번
경찰의 2인자요 최고의 꽃으로 알려지고 있는 서울시경 국장도 마찬가지.
83년 박배근 당시 서울시경 국장은 부임과 동시에 귀가는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불시에 순시하는 것을 즐겨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
국장실 침대에서 자던 박국장은 오전 2시가 넘어 「대통령이 청와대를 떴다」는 무전보고를 받았다. 박국장은 즉시 작업복으로 갈아입어 출동준비를 갖춘채 무전기 앞에서 대기했다. 대통령 일행이 동대문을 통과해 신설동로터리를 지났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즉각 시경을 출발한 박국장은 차내에서 무전으로 대통령이 청량리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상황보고를 받기위해 의자에 채 앉기도 전에 시경국장이 서장실로 들이닥치자 대통령의 입가엔 만족스런 웃음이 떠올랐다.
그후 박국장의 기민성은 일선 서장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면서 경찰지휘관은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6월21일 부임한 서울시경 국장 김원환 치안정감도 부임 이후 단 하루도 집에 들어가 잠을 자본적이 없다. 지난달 23일 2남의 결혼식날에도 폐백이 끝나자 곧 사무실로 돌아왔을 정도다.
범죄와의 전쟁선포 이후에는 경찰총수인 이종국 치안본부장도 사무실에서 철야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예고없는 순시를 하는 편이 아니지만 부하들이 밤샘을 하는 마당에 공관에 가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경찰 고위간부들의 이같은 철야 대기성 근무에는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윗사람 눈치만 본다
「경찰업무 특성상 상황에 대한 즉각 대응력을 높인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교통 통신이 발달한 오늘날 부하들 생각보다 눈치만 보는 표본」이라는 비난이 그것이다.
고위간부가 이런 판이니 말단직원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동호플라자 뒷길에서 30대 여자가 날치기를 당했다. 부근에 있는 순찰차는 즉시 출동하라.』
밤 11시30분 순찰차를 타고 관내를 돌고있던 서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 유흥선순경(36)은 긴급 무전지령에 눈을 번쩍 떴다.
잠지 후 이태원 국민학교 뒷길에서 빼앗은 핸드백을 들고 달아나던 20대 범인을 발견한 유순경팀은 추적을 시작했다.
중앙선을 넘어 U턴하면서 마주오던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겨우 범인을 덮쳐 본서에 인계하자 또 무전이 울렸다. 시간은 이미 오전 1시30분. 『이태원 주택가에 모기(강도) 발생.』
동료 나문균순경(34)과 함께 뛰어 3분만에 현장으로 가보니 범인이 지붕을 타고 달아나는게 보였다. 슬레이트 지붕위를 뛰어다니다 지붕이 무너지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진 범인을 잡아 순천향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게하고 파출소로 돌아오니 새벽 4시30분. 5시부터 관내순찰을 해야하므로 30분간 의자에 앉아 눈을 붙였다.
24시간 맞교대 근무에 따라 잔무처리까지 마치고 집에 오니 점심때가 가까운 시간이다.
『이제 오세요. 무척 피곤하죠.』
국민학생인 두 아들은 이미 학교에 가고 부인(33)만 반가이 맞아준다.
그러나 유순경은 변변한 인사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곯아 떨어졌다.
수사경찰관도 힘든 근무조건으로 오래전부터 기피부서가 돼 버렸다.
○1인당 사건 6건 꼴
서울 노량진경찰서 이화재형사(34)는 『5일 단위로 근무가 반복되지만 비번을 찾아 쉬기는 힘든 일』이라며 『그러다 보니 아이들 얼굴도 잊어먹을 정도』라고 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안해균교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수사경찰관의 82%가 하루평균 14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
또 이들중 57.3%가 1주일에 3∼4일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16.5%가 1∼2일밖에 귀가하지 못한다.
수사경찰관은 현재 총 1만3천6백13명이며 올들어 10월말까지 총범죄 발생건수는 81만8천7백10건. 따라서 수사경찰관 한명당 한달 평균 6건의 사건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거리에서 거의 매일을 생활하는 교통경찰관도 격무를 호소한다.
서울 북부경찰서 교통계 지석봉경장(40)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퇴근때까지 하루 20㎞ 이상을 매연을 마시며 걸어야 한다』며 『저녁에 퇴근하고 나면 두통이 나 진통제를 상용하다시피 하고 밤에는 기침에 시달리고 있다』고 남모르는 고충을 토로했다.<김기봉기자>PN JAD
PD 19901201
PG 05
PQ 03
CP HS
CK 04
CS B04
BL 955
GO 취재일기
GI 김일
TI 부처간 핑퐁 공해공장 민원/김일 사회부기자(취재일기)
TX 29,30일 이틀간 계속된 환경처에 대한 국회보사위의 국정감사에서는 동양화학의 군산 TDI 화학공장에 대한 주민들의 이전요구 문제가 고성과 정회소동속에 「뜨거운 감자」로 다루어졌다.
박영숙·이길용의원 등 야당측은 『군산 시민의 63% 이상이 반대하고 있는데도 사업허가 돼 시험가동중인 TDI공장은 국민무시 행정의 표본이며 제2의 안면도사태가 우려되는 중대 사안인데도 정부는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고 닥달했다. 『정부기관끼리 핑퐁과 하부이첩을 거듭하는 가운데 상처만 악화돼 가고 있다』는 의원들의 추궁은 감사가 진행되면서 상당부분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스펀지·신발 등을 만드는 합성수지의 원료인 TDI가 제조과정에서 포스겐이라는 유독가스를 발생시킨다는 데서 비롯된 주민들의 집단민원은 87년부터 시작돼 지난달엔 시민의 67%인 9만4천여명이 서명한 진정서가 청와대를 비롯한 관계기관에 보내졌는데도 이렇다할 반응이 없는 상태다.
국감에서 답변에 나선 허남훈 환경처장관조차 『정부부처 어디도 나서려하지 않고있다』고 시인했다.
입지·사업승인을 내준 상공부·내무부·전북도·군산시,산업안전점검을 맡았던 노동부,가스안전점검을 책임진 동자부,환경영향 평가를 관장하는 환경처 등 일곱군데나 되는 관련부처가 주민들의 집단 민원사태에는 모두 발뺌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 공장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면 안면도식 밀실행정을 버리고 공개적인 설득에 당당히 나서거나 책임지고 사태해결에 임해야 마땅할 것인데도 책임 떠넘기기로만 시종하고 있다는 야당의원들의 추궁에 허장관은 진땀을 흘렸다. 허장관은 30일 답변에서 결국 『사업승인권자는 아니지만 환경처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늦게나마 의지를 보였다.
그나마 국회마저 없다면 우리의 공동체가 얼마나 표류할 것인지 걱정을 떨칠 수 없는 이틀간이었다.
군산 TDI공장 문제가 「제2의 안면도사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정부만이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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