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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폭발해봤자 "잠만 자는 곳"…'콩나물 시루' 경기도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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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31일 오전 8시50분 화성시 영천동 치동중학교 1학년 3반 교실에서 이주은 담임교사(영어 과목)가 아침 조회시간에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하고 있다. 이 학교는 60㎡ 크기 교실에 책상과 걸상을 두고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손성배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8시50분 화성시 영천동 치동중학교 1학년 3반 교실에서 이주은 담임교사(영어 과목)가 아침 조회시간에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하고 있다. 이 학교는 60㎡ 크기 교실에 책상과 걸상을 두고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손성배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경기 화성 동탄1·2신도시 사이에 자리 잡은 치동중학교 1학년 3반 교실. 60㎡(18평) 규모였지만 사물함이 없었다. 대신 교탁 앞까지 34개의 책·걸상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이 반만 그런 게 아니다. 1학년(8학급)과 2학년(4학급) 교실마다 31~32명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지난해 3월 1일 문을 연 신설학교임에도 교육부의 과밀학급 기준(28명)을 넘긴 것이다.

치동중의 ‘콩나물시루 교실’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학교 측은 동탄신도시 입주 속도 등을 고려해볼 때 내년 1학년 교실은 8~10학급, 2학년 8학급, 3학년(현재 2학급)은 4학급으로 늘 것으로 예상한다. 2~3년 뒤엔 전 학년이 모두 10개 학급 이상이 되는 매머드 중학교가 될 판이다. 노의환(51) 치동중 교무부장은 “동탄2신도시 입주가 본격화되고, 시범단지 쪽 학교에서 수용하지 못한 학생들까지 입학하면서 이 일대 중학교는 ‘28명’은 꿈의 숫자가 됐다”며 “교사도 힘들지만,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고 말했다.

동탄1·2신도시에 초등학교는 143곳이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71곳과 38곳(특성화고 제외)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택지개발 시 지자체와 학교 신설을 논의하지만, 비싼 땅값 등으로 용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1400만명 넘어선 경기도…주원인은 집값

 경기도 인구는 지난 4월 말 기준 1400만3527명(내국인 1360만7919명, 등록외국인은 39만5608명)을 기록했다. 2016년 8월 1300만명을 돌파한 지 6년 8개월 만에 100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전국민(4월 기준 5264만5711명)의 26.6%가 경기도에 살게 됐다. 경기도의 인구급증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의 동전의 뒷면인 셈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2016년~2022년 경기도로 99만여명이 들어왔는데 전출은 7만 명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도내 인구가 2039년 정점(1479만명)을 찍은 뒤 2040년부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1일 중앙일보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을 통해 2016~2022년 경기도 전입·전출 인구를 분석한 결과 화성시(28만4277명), 하남시(15만3581명), 김포시(12만3219명), 평택시(11만1880명), 시흥시(10만3905명) 등 도내 31개 시군 중 19개 시·군에서 인구가 늘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특히 화성시의 인구 밀집 현상은 눈에 띈다. 2001년 시(市) 승격 땐 21만명이었지만 97만8653명(4월 기준)으로 크게 늘었다. 이르면 올해 말 100만명을 넘어서 수원(122만6735명)·용인(109만2738명)·고양(108만9934명)에 이어 4번째 경기지역 특례시가 되고 2036년엔 수원시(119만6000명 예상)를 제치고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기초자치단체(120만1000명)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기도의 인구 증가 원인을 ‘집값’과 ‘일자리’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경기도 인구 증가를 주도한 화성·하남·김포·평택·시흥시 등은 최근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대규모 택지 개발이 이뤄진 지역이다. 통계청이 매년 발간하는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2022년 경기도 전입 인구는 총 1366만4371명인데 도내 이동이 914만6520명으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는 서울(243만3736명), 인천(48만4040명), 충남(24만3340명), 강원(19만4466명) 등지에서 몰려들었다.

서원석 중앙대 교수(도시 계획학·부동산학)는 “최근 몇 년간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더는 서울에서 버티기 힘들어진 이들이 대거 경기도로 이동했다”며 “부동산 대란이 신규개발지역이 포함된 하남·김포·화성 등으로 인구가 집중하는데 가속도를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하남시 관계자는 “경기도(하남·성남)와 서울 송파구 경계에 조성된 위례신도시는 같은 생활권이지만 ‘하남·성남 위례’와 ‘송파 위례’의 아파트 가격이 3~4억원 차이가 난다”며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싼 집값 때문인지 주로 서울 송파·강동구 주민들이 많이 이사 왔다”고 말했다. 통계청 조사에서 같은 기간 화성·하남·김포·평택·시흥 총전입자 수 314만8063명 중 전입 사유를 ‘주택’이라고 답변한 사람이 44.17%(139만512명)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타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이들의 목표는 서울이지만 여의치 않으니 경기도로 유입되는 것”이라며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서울엔 개발할 땅이 없으니 경기도로 눈을 돌린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경기 남부에 다수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체들이 여럿 들어선 것도 수도권은 물론 충남, 강원 등의 인력이 경기도로 쏠리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인구는 급증하는데 기반시설은 제자리

세종시와 강원도 철원군을 잇는 43번 국도 화성구간은 인구 증가 등으로 2014년 2만대이던 하루 평균 차량 통행량이 지난해 4만대로 2배 늘면서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최모란 기자

세종시와 강원도 철원군을 잇는 43번 국도 화성구간은 인구 증가 등으로 2014년 2만대이던 하루 평균 차량 통행량이 지난해 4만대로 2배 늘면서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최모란 기자

 “인구 증가는 지자체의 세수 증가에 도움을 주고 교육·교통 인프라가 들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이병호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가도 나오지만, 경기도 관계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학교·도로 등 기반시설 확대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종특별자치시와 강원도 철원군을 잇는 43번 국도(총 270㎞·왕복 4차선)의 화성시 구간은 운전자들 사이에서 ‘거북이 도로’로 불린다.

특히 봉담읍에서 향남읍으로 이어지는 5㎞ 구간은 1㎞를 이동하는데 통상 10분 이상 걸린다. 인구 증가 등으로 이 도로의 하루 평균 차량 통행량이 2014년 2만대에서 지난해 4만대로 2배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수원시 권선구에서 화성시 회사로 출퇴근하는 박모(41)씨는 “집에서 회사까지 23㎞ 거리인데 교통체증으로 출근하는데 1시간 30분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43번 국도 화성 구간은 수원·용인·동탄신도시와 화성 서부 및 평택시로 이어지는데, 화성시에 등록된 공장·기업 1만2242개 중 80~90%가 화성 서부권에 몰려있어 출퇴근 시간이면 교통체증이 심각하다”며 “서울지방국토관리청 등에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로를 확장하자고 건의해 공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교통체증은 경기도 택지 개발지역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인구가 급증한 도시를 중심으로 공공시설 증설 요구가 이어지면서 경기남부경찰청은 2027년까지 수원팔달·평택 북부·용인수지·시흥 남부 등 4개 경찰서와 광주경찰서 송정지구대·김포경찰서 본동파출소·하남경찰서 미사2파출소·화성서부경찰서 새솔파출소 등 4개의 지구대·파출소를 짓는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도 2027년까지 소방서 1곳과 119안전센터 26곳을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추가 증설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병원·문화시설 등도 해묵은 현안이 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택지개발로 인구가 급속히 늘었지만, 예산 제약 등으로 기반 시설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소비 등 경제활동은 서울에서 하고 경기도에선 ‘잠만 자는’ 사람 비중이 큰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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