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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 인사·폭력배와 벌인 술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역사회를 대표하고 치안책임을 맡고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폭력조직배의 우두머리와 술을 마시다 보복 유혈극으로까지 발전한 대전 룸살롱 편싸움 합석사건은 우리에게 깊은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준다.
이들 일부 인사들의 행각은 보도대로라면 마치 마피아 범죄조직을 다룬 영화를 연상시킨다. 낮에는 법정에서,의사당에서,기업에서 법과 사회정의를 말하고 밤이면 술자리에 끼여들어 범죄 두목들과 머리를 맞대며 함께 어울렸다.
폭력과 범죄가 이 사회를 공포와 불안으로 몰고가는데도 아랑곳없이 이들은 엄연히 폭력조직배의 두목들과 술자리를 함께 할 만큼 사회의 절박한 문제에 대해 둔감했고 자신들이 의정과 법치안을 집행하는 당사자라는 직업윤리에도 충실치 못했다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이런 부도덕성과 무책임성이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인천 「꼴망파」 두목에 대한 두 국회의원의 석방탄원서와 그 사건을 축소 조정했다는 혐의를 짙게 풍겼던 인천지검의 사태추이를 보면서 폭력사태 뒤에는 언제나 이들을 비호하는 강력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심증으로 믿고 있던 터였다.
또 수원지역 폭력배 두목과 여권내의 유력인사가 다정히 손잡고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그런 심증을 더욱 확인시켜주었던 터였기에 이번 대전 편싸움 합석사건은 우리를 더욱 좌절감에 빠지게 한다.
물론 한때 전비가 있었던 사람이라 해서 현직 판·검사나 국회의원이 함께 어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전비를 뉘우치고 개과천선토록 설득하거나 또는 용기를 북돋우는 배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런 선의의 동기로 보기엔 사후처리가 의혹투성이다.
물론 피해자 한쪽의 법정진술에서 나온 소리이기 때문에 아직은 사건의 자세한 전모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렇다 해도 검찰은 이 사건의 초동수사를 맡았던 경찰에게 「손을 떼라」는 압력을 넣었고 범인이라 자처한 2명이 자수하자마자 사건을 서둘러 종결시켰다.
바로 이런 정황들로 인해 사회 지도층 전체 인사들에까지 국민적 불신이 번지게 하고 범죄와의 전쟁이란 말뿐이지 기실 형식적이고 소극적이지,근원적 처방은 결코 될 수 없다는 허무감에 빠지게 한다.
이 사건은 지역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다가 생겨난 우발적 사건으로만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이 사건 하나가 주는 불신의 의혹이 사회 지도층 인사 전체에 대한 불신,나아가 이 사회의 기강 전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사건 수사를 원점에서 다시 해야 한다.
국회의원과 판·검사가 극소수나마 폭력조직과 연계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시켜주고 앞으로는 그런 의혹조차 줄 행동이 없으리라는 신뢰감을 갖도록 이 사건은 엄중하고도 공개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쩌다 발생한 작은 사건이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이 사회의 기강을 확립하는 전기로서 이번 대전 룸살롱 편싸움 합석사건은 전면 재수사해야 함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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