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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코너] '황산벌' 거시기役 이문식씨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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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학생들이 공부를 못해도 '세상에 조연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조연이지만 빛나는 영화배우 이문식(37)씨. 그는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공부했는데 조연급(?) 외모 때문에 영화배우는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영화계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계기가 돼 배우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달마야 놀자''나비''공공의 적'등에서 조연으로 열연하며, 그는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주연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황산벌'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의 역할을 했다. 존재감 없는 조연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거듭나기까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해 영화 '범죄의 재구성' 촬영지인 부산으로 가 그를 찾아봤다.

-영화에서 조연의 역할을 정의한다면요?

"주연과 조연은 운동에서 자기 위치 같은 거라 생각해요. 야구에 투수도 있고, 외야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조연도 주연처럼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무명 시절 기억나는 얘기 좀 해주세요.

"단역 시절엔 서러움을 많이 당했죠.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출연료를 깎자고 하는 데도 있었으니까요. 나비를 촬영하며 삼청교육대에서 지옥훈련을 받는 역을 맡았는데, 연기를 위해 한달 정도 두부와 김치만 먹으며 몸무게를 5㎏ 줄인 기억이 생생해요."

-황산벌로 주연급 조연이라는 호칭을 얻으셨죠?

"사실 저는 주연급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얼굴이 좀 알려지며 영화 섭외가 많이 들어오니 경제적으로 나아졌다는 것밖에 없어요.(웃음)"

-'황산벌'에서 '거시기'들을 대표하는 역을 맡았는데.

"거시기가 영화에서 대표성을 갖는 인물이라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췄죠. 황산벌 전투는 계백과 김유신 장군의 전투가 아니라 수많은 거시기들이 주인공입니다. 전쟁에서 죽거나 다치는 것은 병사들이잖아요. 거시기들도 나라가 위급하니까 나가 싸우지만 전쟁에서 누가 이기든 그들의 생활은 별로 달라질 게 없어요. 지금도 세상에는 수많은 민초인 거시기들이 살고 있잖아요."

-맞아요.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거시기가 있는데, 주연들보다 더 빛나게 살고자 하는 그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맡은 위치에서 장인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길이 트이게 됩니다. 그러면 수많은 거시기들이 자기 인생에선 주연으로 살 수 있을 거예요."

-배우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도움되는 말씀을 해주세요.

"배우는 말하고 듣고 느끼는 직업이니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영화.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든 살면서 얻은 직접 경험이든 자기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은 충분히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이민아 학생기자(울산 학성여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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