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칸에 왔어요. 출산이 한 달밖에 안 남았지만, 그쪽은 임산부에게 더 많이 걷고 움직이라고 권하는 문화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저는 영화제에 와 있지만, 신경은 온통 그리로 다 가 있긴 해요. 아! 빨리 일 끝나고 와이프 챙겨야 하는데….”
24일 송중기 느와르 '화란' 칸영화제 공개 #신인감독·저예산 영화에 노개런티 출연 #"새벽 촬영중 부재중 통화, 칸이었죠"
여전히 해사한 소년 같은 얼굴로 웃고 있는 송중기의 입에서 “와이프” “출산” “아기” 같은 말이 나오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다. 어쩌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영화 ‘화란’을 통해 만나게 될 배우 송중기의 얼굴도 그만큼이나 낯설 것이다.
그가 연기하는 폭력조직의 중간보스 ‘치건’은 시종일관 건조하고 허무한 음성과 그늘지고 메마른 표정으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어두운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지하방에 붙어 있는 껌처럼 어둡고 찐득찐득한 느낌이었어요. 이상하게 그게 좋더라고요. 어쩌면 제가 그런 걸 원했던 타이밍이었던 것 같고요.”
‘화란’ 공식 상영 전날인 23일(현지 시간) 현지에서 그를 만났다.
송중기 “성공은 많이 해봐…불확실한 게 재밌죠”
영화 ‘화란’은 저예산이라는 작업환경에 신인감독, 주인공 연규 역의 홍사빈을 비롯해 주요 배역이 신인으로 채워진 영화다. 모든 면에서 확신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는 “그 불확실한 걸 하는 게 너무 재밌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성공을 너무 많이 해봐서인지(웃음) 이제는 제가 재밌는 것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상업 영화적 흥행에 대한 부담감에 지칠 때도 있었고, 연기적으로도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던 순간에 만난 작품이었어요. 관객들이 보시기에는 주인공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 숨이 좀 안 쉬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화란’을 만나면서 숨통이 트였어요.”
‘화란’의 김창훈 감독은 송중기를 만나기 전부터 “눈이 굉장히 서늘하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반대되는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걷어내고 제가 느꼈던 가려진 이면이 드러난다면 이 인물과 굉장히 닮지 않았을까, 치건은 악인이라기보다는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송중기 배우가 가진 양면적인 모습이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감독으로서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은 많이 했죠. 하지만 첫 촬영 날 모니터 앞에 송중기 배우가 딱 서 있을 때 걱정이 다 없어졌어요. 이미 치건, 그 자체였거든요.”
함께 연기한 하얀 역의 배우 김형서(비비) 역시 “미디어를 통해서 보았던 끝내주게 잘생기고, 끝내주게 매력 있는” 송중기의 눈이 “카메라가 돌아갈 때 안광이 싹 죽으면서 바뀌는 순간”을 목격했다. “너무 신기한 거예요. 역시 배우는 눈빛이구나.”
"새벽 촬영중 부재중 전화, 칸이었죠"…임신한 아내 동반
송중기가 영화 '화란'의 칸 영화제 초청 소식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신작 ‘로기완’ 촬영 중인 헝가리에서였다. “촬영 끝나고 보니까 부재중 전화가 너무 많이 와 있는 거예요. 뭔 큰일이 났나 했어요. 한국은 그때 새벽 5시인가 그랬거든요. 그 날 슬픈 장면을 찍고 있어서 감정 집중을 해야 했었는데, 속으로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웃음) 초청이 영광인 동시에 워낙 저예산 영화라 영화제가 이 작품을 알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거든요. 여러모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화란’의 첫 프리미어에는 아내 케이티와 동행할 예정이다. “와이프가 예전에 배우 생활할 때 영화제에 자주 왔었던 ‘칸 선배님’이라 조언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 뤼미에르, 드뷔시처럼 말로만 들었던 극장의 이름이나 위치를 비롯해서 인터뷰나 파티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등 유럽의 영화제 문화에 관해서도 얘기를 많이 해줬죠.”
영화 ‘화란’은 24일 오전 11시(현지시간)에 첫 상영될 예정이다. 칸 영화제의 관객들은 송중기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 아래 뜨거운 지중해의 햇살을 잠시 피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