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순결·결백 상징 신앙적 색깔로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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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백색 숭상>
문화란 상징형식을 통해 표현되는 의미의 패턴이다. 모든 민족은 각기 그들이 사용하는 기호(Sign)·신호(Signal)·국기·색조 등을 통해 자기들의 심리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출해 왔다.

<예물은 흰 천에 싸>
내몽골 외몽골 어디를 가나 일상생활의 물결 속에서 백색의 물결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도 백의민족임을 자랑해 왔고 늘 백색을 숭상해 왔다. 그런데 몽골 족의 백색 숭앙은 우리보다 더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몽골 인들은 일년 열 두달 중에서 정월을 가장 사랑한다. 정월을「차간 사라」라 부르는데「흰달」(백월)이란 의미로「모든 일의 시작」을 뜻하는 백색 상징이 들어 있다. 그리고 1년 중 가장 경축하는 날도 정월초하루인데『사기』기록에 의하면『매년 이날이 되면 임금과 그의 영토에 사는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관례에 따라 흰옷을 입는다. 원단에 조공 바치는 금과 은·보석 등의 귀중 예물은 흰 천에 싸야만 한다. 왕족뿐 아니라 여타 귀족층도 모두 각자의 집에서 흰색 선물을 건네준다. 특히 이날 말을 선사할 경우에는 은백색의 준마를 선사하도록 되어 있다』고 돼 있다.
또『몽고 비사』는 원나라는 하늘을 제사 지냈으며 이런 제사의식은 주로 깨끗한 나무를 걸어 놓고 마요 주와 곡물을 바치며 천 제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큰 제는 샤먼이 주재하나 가족단위일 때는 가장이 주재한다. 제의 종류는 색으로 구분 지워「백제」「홍제」로 나누게 되는데 백제는 주로 몽골 족의 젖으로 만든 제품으로 제를 올리는 의식을 말하고 홍제는 주로 양의 피로 제를 올리는 의식을 일컫는다.
라마교가 몽고초원에 들어와 불탑들을 세웠지만 모두 몽골 풍의 흰색 둥근 탑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칭기즈칸의 영을 모신 탑을 일러 그들은「백탑」이라 이르고 있으며 탑은 물론 여러 탑을 연결한 탑 벽까지 온통 백색 치장이다.
민간에서는 길상을 뜻하는 백색의 선물「하다」(예단)를 나누는 것을 비롯하여 백색음식·백색 옷(장삼)·백색주거 환경이 있어 더욱 흥미롭다.
그들은 음식도 백식, 홍 식으로 나누는데 백색식품으로는 두부와 기름 등 이 있으며 의복 중 가장 즐겨 입는 옷은 눈처럼 하얀 색깔의 가죽으로 만든 짧은 옷이고(원나라 때 고관들은 모두 흰 예복을 입었다), 사는 집도 백색의 겔(몽고 천막)속에서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몽골 족은 백색 속에 충만한 희망이 깃들인다고 믿었고 급기야 백색신앙으로까지 번져 순결과 결백의 상징, 복록의 상징, 지고 무상의 신앙적 색깔로 굳어지게 되었다. 마닛대에 다 예단인 하 다를 올리는 의식도 바로 신성한 신의 예물로서의 백색신앙의 기능을 의미하고 있다.
아무튼『몽골 인들은 흰색에서 시작하여 흰색으로 끝난다』는 그들 속담대로「백색 문화」(백속)원형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조사단의 안내를 맡았던「바다」양은 맨시르에 있는 길가 오보에 이르자 세 개의 돌을 줍더니 천천히 세 번에 나눠 던졌다. 어깨서 세 개의 돌을 던지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몽골 인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접대 술도 석잔>
내몽골 호텔에 들렀을 때 흰 예단인 하 다를 앞세운 여인들이 우리 일행을 환영하고 권주가를 곁들이며 접대했을 때, 마시라고 부어 준 술잔수도 석잔 이었고, 그들이 술을 마시기 전에 세 번 손가락으로 퉁기는 모습을 보고 신비로움을 느꼈다. 바치는 술잔 속의 술, 곧「백주」에다가 손가락을 넣어 세번 퉁기는 것은 하늘 천 신과 지상·지하의 조상을 위하는 의식이었다. 내몽골 연예인들이 돌리는 사발 춤의 사발 수도 세 개 였고, 흥이 고조를 이루자 기수인 다섯 개로 사발돌림을 했다. 우리 단군신화에서도 삼위태백, 천부인삼개, 율주삼천, 3백60여사, 삼칠일에서 보는 바와 같이 3자가 가장 많이 쓰였으며 오늘날 민속에서도 대문을 두드릴 때, 약수 물을 뜰 때, 진언을 외울 때 3이란 수가 많이 이용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몽골 인들은 예물을 주고받는 것을 한국인처럼 중요시한다.
그들은 대다수가 소·말·양을 예물로 쓰는데 9라는 숫자를 길 수로 여기기 때문에 9로 시작하여 19에서 59, 69를 쓰며, 아무리 많아야 81을 초과하지 않는다. 8+1은 9이므로 많고 좋은 수라고 간주한다.
동 몽골 지역의 나담(일종의 민속축제)씨름대회에서는 우승자에게 99가지의 상품 및 은 빗 콧등의 낙타를 상품으로 수여한다. 씨름선수는 삼색의 두건을 감고 목에는 오색 띠를 두르고 시합에 임한다. 아무리 무시해도 짝수의 예물을 쓰지 않는다.
9리는 수는 길 수 3이 세 번이나 겹친 수이기 때문에 길수 라기 보다 성수로 여겼던 것이다. 옛날 몽골 족이 제사를 지낼 때 모신 신은 9형제 신이었던 바 9를 성수로 여겼던 관념이 아주 오래 전 원시시대부터 있어 왔음을 짐작케 한다.

<원시 때부터 전래>
칭기즈칸이 국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9일간 경축했고, 자아한산을 향해 아홉 번 고개 숙여 절을 했고, 9족의 흰 소 깃발을 게양하여 최고의 권위를 상징했다. 이 같은 관습은 민간에도 전해져 어느 제이든 아홉 가지 제물을 바치며, 결혼할 때 아홉의 배수(19에서 99)로 결혼선물을 준비하고 예물로 바치는「하다」도 아홉 척의 긴 흰 비단이며, 잔치 때 불러 주는 축가이름도「구구 예가」이니 가위 얼마나 9라는 숫자를 선호하는지 알 만하다.
그들 신화「일식과 월식」에 나오는 귀신 왕「가라 주」는 영생을 얻고자 천하수(은하수)를 훔쳐먹으려 한다. 이유인즉, 99번 천하 수를 마시면 불노장생 하기 때문이다.
『몽고 비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칭기즈칸의 11대 조상이신 자단찰아가 집안에서 버림받아 산으로 들어가 혼자서 살았다. 그는 매 한 마리를 키웠는데 항상 그의 곁에서 지냈다. 매는 자라서 매일 사냥을 나가 그에게 사냥해온 살찐 산양과 기타 동물들을 주었다. 몇 년이 지나 그가 용서받게 되자 집안에서 그를 다시 찾아 데려온다. 그후 자단찰아의 후손들이 번영해져서 자아형근 씨족이 되었다. 자아형근 씨족들은 이 매를 기념하여 매 신으로 봉하였다. 이때부터 매를 보호 신으로 삼았고 떠받들게 되었다고 한다.
문헌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도 전한다.

<매에 얽힌 설화도>
한번은 칭기즈칸이 피난 중 목이 말라 뱀독이 있는 샘물을 마시려고 하자 매가 물 겁을 세 번이나 엎어 버려 오해를 하고 칭기즈칸이 매를 죽여 버렸는데 물 속에 독 품은 뱀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를 살려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몽골 족은 매를 존경하여 신으로 모셨고 더더욱 뱀 종류를 미워하게 되었다.
정적들이 칭기즈칸을 고의로 빠뜨리려고 함정을 파 놓았다. 그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그의 말 위에 있는 사냥매가 쥐가 함정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그 비밀이 탄로 나게 되었다. 사냥매가 칭기즈칸에게 공을 세웠기에 샤먼교주가 신의 모자 위에 매의 문양을 새겨 놓아 신조의 지고 무상과 신의 머리 위에 있음을 표시했다.
이상에서 몽골문화에 나타난 성수 3과 9의 수 개념과 그들 백 속 문화 및 매 숭배에 대한 상징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같은 상징이라 할지라도 그 민족의 기호와 성정의 차이에서 오는 다소간의 이질감만은 없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글=김선풍 교수(중앙대·구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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