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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보고 자란 2030 “노재팬”보다 “고재팬” [MZ세대 ‘일본 셔틀 여행’ 바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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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11면

SPECIAL REPORT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네온사인으로 ‘입장’하는 대한민국 대전의 1997년생 삼총사. 왼쪽부터 박서현·신미희·김혜인씨.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네온사인으로 ‘입장’하는 대한민국 대전의 1997년생 삼총사. 왼쪽부터 박서현·신미희·김혜인씨.

지난 12일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골목을 돌 때마다 한국어가 들렸다. 최근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세 명 중 한 명은 한국인이라는 통계가 실감 났다. 특히 2030세대가 두드러지게 많았다. 심지어 같은 가게 한 자리 건너 세 팀이 한국의 2030이었다. 일본을 찾은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은 2030이라는 말도 피부에 와 닿았다.

2030은 일본을 좋아하는 세대일까.

한국리서치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와 30대 36.4%가 일본에 호감을 갖는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이하만 보면 42.4%가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다. 전 연령대의 호감도 34.9%보다 월등히 높다. 2021년 동아시아연구원(EAI) 조사에서는 20대의 29.5%가 일본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전체 연령대 평균인 20.5%와 9%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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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특히 20대는 20대의 일본에 대한 선호도는 타 세대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고 밝혔다. 2021년 EAI 조사에 따르면 20대가 일본에 대해 갖는 호감도는 한국인 평균보다 10% 정도가 높고, 비호감도는 20% 정도 낮았다. 심지어 2019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무역분쟁 문제가 불거지기 직전의 조사(EAI)에서는 20대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41.9%)가 비호감도(33.9%)를 앞서는 조사도 나오기도 했다. 통상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높은데,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2030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태어났거나, 그 시절에 청소년기를 경험한 세대다. 같은 해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면서 포켓몬·슈퍼마리오·드래곤볼·슬램덩크·명탐정코난 등 일본 콘텐트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이 교수는 “자연스럽게 문화적 교류가 늘어나면서 일본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데다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여행을 반복하다 보니 호감도의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2일 오사카의 유니버셜스튜디오에서 만난 김남혁(27·수원)씨와 김소연(가명·26·서울)씨가 “어릴 적 추억을 심어준 슈퍼마리오를 만나기 위해 찾았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일본을 찾는 2030은 일본에 무조건적인 호감을 갖고 있을까. 이 교수는 2030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무조건적인 추앙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는 “기성세대에게 일본은 선진국·강대국이고, 우리는 약소국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며 “반면 세대가 젊어질수록 한일 관계를 보는 눈이 건전해지고, 어떤 면에서는 한국이 더 우월하다는 인식이  깔린 채 일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여행은 매력적입니다. 과거사요? 그건 따로 생각해야죠.”

오사카 난바역 근처의 실내암장에서 만난 김창원(32·서울)씨가 되레 물어본 말이었다. 김씨도 “어릴 적부터 여러 캐릭터를 통해 간접 경험한 일본이 궁금해서 처음으로 여행을 온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행을 통해 일본 문화를 즐기되, 과거사에 대해서는 엄격해져야 한다는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2019년 7월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단행하면서 불거진 국내 노재팬(일본 상품 불매 운동) 당시 20대와 30대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각각 19.2%, 21.7%였다. 전 연령대 평균 22.2%보다 낮은 수치였다. 2030이 현재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평균 이상’인 것과 대조적이다. 2021년 전 연령대 한국인의 51.6%가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 1순위로 ‘위안부, 강제동원 등 역사문제’를 꼽았을 때, 20대는 51.5%가, 30대는 51.9%가 이 사안을 역시 1순위로 꼽기도 했다(EAI 조사).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MZ세대가 일본에 대한 친근감을 갖고 있음에도 한일 간의 갈등 사안에 대해서 기성세대와 확연히 다른 태도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며 “이들에게는 “문화는 문화, 역사는 역사”라는 ‘사고의 분리 현상’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원덕 교수는 “2030 세대가 일본 문화를 즐기고, 일본 여행에 빠진다고 해서 과거사 문제를 하등시하거나 홀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MZ세대는 일본을 수직적, 비대칭 관계로 보지 않고 수평적. 대칭 관계로 보기 때문에 교류도 많아지고, 호감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현(20·서울)씨가 도쿄 아키하바라의 한 피규어 전문점에서 ‘귀멸의 칼날’ 굿즈를 만지작거렸다. ‘귀멸의 칼날’은 김씨가 중학교 때 푹 빠졌던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다음 달 입대를 앞둔 그는, 제대 후 다시 일본에 온다고 했다. 일본을 다시 찾으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냥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왜 일본에 호감을 갖느냐는 질문에 ‘이유 없이 좋다’는 답이 가장 많은 연령대가 20대이기도 하다(EAI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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