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위질 보다 심의제도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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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공연 윤리 위원회(위원장 곽종원)가 스스로 현행 영화심의 등급제도를 고쳐 보려는 뜻으로 심포지엄을 열어 영화계의 최 난제인 심의문제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
공륜은 지난여름 미국에서는 R등급(17세미만 성인동반 입장 가)작품인『로보캅 II』등을 일부장면 삭제 후 연소자 입장가로 분류,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었다.
26일 세종문화회관 대 회의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나온 대부분의 영화 관계자들은 현 반관식의 공륜을 민간 자율기구로 전환, 정치적으로 독립시키는 한편「성인 전용 극장」을 설치해 포르노 물과 청소년을 차단하자는 데 입을 모았다.
현행 공륜의 영화심의는 일부장면 삭제 작업을 가미, 4등급(연소자·중학생이상·고교생이상·성인용)으로 나누는 절충식으로 ▲장면 삭제는 영화인의 창작자유를 침해하고 ▲등급구분 또한 명백한 기준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시비 대상이 되어 왔다.
따라서 이번 공륜의 심포지엄은 미국의 등급제도인 G(모든 연령 입장 가)·PG(부모지도)·PG13(13세 이하 부모주의)·R·NC17(17세미만 입장금지)·X(포르노)를 원용, 한국도 장면삭제는 지양하고 엄격한 등급판정에 주력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러한 공륜의 등급 심의 논의를 환영한다는 김수용 감독(청주대 교수)은『소련에서까지 영화검열을 중지한지 4년이 된 마당에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가위질이 횡행하는 것은 말도 안되며 심의는 확실한 등급 판정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영화의 심판관은 상식을 갖고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지 결코 명사라는 이름의 영화 문외한의 가위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 장면 삭제불가에 대해 김 감독과 뜻을 같이한 정진우 감독도「다만 급격한 제도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절충안으로『우선 부모나 교사 또는 성인의 보호자가 동반했을 경우에는 미국의 R등급에 대해 13세 이상의 관람을 허용하고 그 대신 우리의 문화환경에 맞춰 필름의 원형 수정을 허용하라』고 제안했다.
현실적으로 통제하기가 어려운 청소년들의 관람욕구를 억눌러서 일어나는 역작용을 자연스럽게 막아낼 수 있는 합리적이고도 적극적인 청소년 보호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정 감독의 주장이다.
정 감독은 또한 미국의 경우 이러한 동반관람 허용이라는 제도가 정착된 후 약30%이상의 관객증가 효과가 나타났으며 이 효과는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것으로 보여 이것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한국 영화산업 육성에도 큰 기여를 하는 부수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가 이성재 씨는 미국의 등급제도를 그냥 따르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며 오히려 공륜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씨는 대부분의 기성 제작자가 아직도 의무 제작편수를 채우기 위한 싸구려 대명 제작이나 일삼고 외화수입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실정에서 미국식으로 삭제 작업 없이 등급심의만 한다면 성 애물·폭력물이 극장가를 석권할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등급심의 제 보다는 성인 전용 극장을 설치, 성인대상 포르노·폭력물은 처음부터 한곳에 몰아넣는 적극적인 예방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공륜의 심포지엄을 지켜본 영화인들은 결국 공륜이 소재 제한 따위의 방어적 정책에 머무르지 말고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한다는 입장을 지킬 것과 저질에로·폭력물과 이를 만드는 영화제작자들은 사회로부터 격리할 수 있는 공격적 정책을 병행해 줄 것을 당부 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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