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다큐 '디어 평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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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인 다큐멘터리는 웬만한 극영화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지어낸 이야기에선 찾을 수 없는 진정성이 다큐멘터리에 녹아 있기 때문. 재일동포 양영희(41) 감독의 '디어 평양'(사진)이 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베를린영화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싱가포르아시안페스티벌 최우수 다큐멘터리 감독상 등을 받았다.

'디어 평양'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북한이 소재다. 세 아들을 북으로 보낸 재일동포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는 딸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딸은 감독 자신이다. 평생을 김일성 체제에 충성하며 살아온 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지기 직전에야 아들들을 북으로 보낸 것을 후회한다. 평양에 사는 아들 가족이 보고 싶지만 자유 왕래는 고사하고 전화 한 통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동안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딸은 병석에 누운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며 아버지의 인생을 이해해 보려 한다.

영화에는 평양 시내와 주민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감독은 1990년대 중반부터 수차례에 걸쳐 평양에 사는 오빠 가족을 찾아갔던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2001년에는 아버지의 진갑 잔치를 평양 옥류관에서 벌이기도 한다. '혁명의 수도'라며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안내원의 설명과 달리 카메라에 비친 평양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얼핏 정치색이 짙어 보일 수 있지만 감독은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는 관심이 없다. 평양은 보고 싶은 오빠 가족이 살고 있는 그리움의 공간이면서 사랑하는 아버지가 일생을 바친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디어 평양'이란 제목은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말로도 통한다. 해외 영화제의 화려한 수상 경력은 이 영화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부모와 자식의 갈등과 화해야말로 인류가 영원히 안고 가야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23일 서울 명동의 CQN극장에서 개봉한다. 주로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했기 때문에 화면은 그다지 좋지 않다. 양 감독은 차기작으로 평양에 사는 조카의 이야기를 담은 '선아, 또 하나의 나'를 준비 중이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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