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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 “기밀 무단유출 보고받아”…도감청 이례적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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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대통령실에서 조현동 신임 주미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미국은 조 대사 신임장 제정식을 17일(현지시간)로 잡았다. 이달 말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일정을 고려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조 대사에게 빈틈없이 준비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대통령실에서 조현동 신임 주미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미국은 조 대사 신임장 제정식을 17일(현지시간)로 잡았다. 이달 말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일정을 고려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조 대사에게 빈틈없이 준비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

미국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11일(현지시간) 최근 SNS에 유출된 기밀문건은 올해 2월 28일과 3월 1일자 자료라고 확인했다. 미국이 동맹국을 포함해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도·감청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문건에는 관련 내용이 도·감청을 의미하는 ‘신호정보(SIGINT·시긴트)’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 명기돼있다.

미국, 유출 가능한 인물 찾기 주력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날 미국과 필리핀의 외교·국방장관 간 ‘2+2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나는 지난 6일 오전 민감한 기밀자료의 무단 유출에 대한 보고를 처음 받았다”며 “이후 대응책 마련을 위해 매일 고위 간부들을 소집했고, 부처간 노력에 대해서도 긴급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일 보고 전부터 온라인에 관련 문건이 떠돌아다녔는데 왜 정보기관은 몰랐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문서의 날짜는 2월 28일과 3월 1일”이라며 “그 전에 온라인상에 다른 문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조사를 하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문서는 2월 28일과 3월 1일 문서”라며 “현재로선 누가 그 시점에 접근 권한을 가졌는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출처와 범위를 찾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도·감청을 주도한 미국 정보기관 중 하나인 중앙정보국(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도 이날 텍사스주 라이스대학 강연에서 사실 인정을 전제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국방부와 법무부가 매우 강도 높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번스 국장은 “이번 일로부터 업무처리 절차의 개선 등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통신은 조사 책임자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기밀문서가 유출된 동기와 유출할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오스틴

오스틴

기밀문서 유출 경위와는 별개로 100여쪽의 기밀문건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담겨있는 점 역시 미 당국의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김태효 1차장은 지난 11일 “오늘 아침 양국 국방장관이 통화했는데,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한·미 간의 평가가 일치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관련 유출 문건에는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 차장과 이문희 당시 외교비서관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포탄 판매 압박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변경하거나 우크라 지원에 적극적인 폴란드를 ‘최종 사용자’로 수출하는 대안을 논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올해 2월 27일 작성된 것으로 기재된 ‘대한민국 155 운송 일정표(33만)’(ROK 155 Delivery Timeline(330K))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한국산 155㎜ 포탄 33만발을 유럽 등지로 옮길 경우 이용될 동선과 소요시간 등이 빼곡히 적혀있다.

그런데 정부와 방산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 2월 10만발 이상의 155㎜ 포탄을 추가로 판매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한국은 최근 미국에 50만발을 판매가 아닌 대여하는 내용의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공교롭게도 이날 언론에 공개됐다. 유출 문건에서 언급되지 않은 제3의 방안이다.

물론 여러 대안 중 (도·감청 되지 않아) 문건에 담기지 않은 미국 대여안으로 최종 결정됐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단 이를 근거로 위조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날 미국의 ‘공식 입장 표명’과 ‘향후 조사 결과 공유 약속’을 토대로 이번 사안을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이달말 미국 국빈 방문을 협의하기 위해 워싱턴 덜레스공항에 도착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기자들에게 “(도·감청은 있었지만)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같은 주제로 물어보시면 저는 떠나겠다”라고도 말했는데 사태 일단락에 대한 의지가 엿보였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지금 미국 정부 관련 기관에서 사실 확인 중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나오면 한국과 공유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논란이 마무리돼 가는 단계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역대 최단기간 내 미국 정부의 아그레망(사전 동의)을 받은 조현동 주미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방미 일정을 빈틈없이 준비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도 나섰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도청하는 것은 공공연하게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미국이 우리만 집중적으로 했다면 심각한 문제겠지만 모든 나라가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 “미국에 재발방지 약속 받아야”

반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정부는 도청 의혹의 실체를 낱낱이 파악하고, 사실이라면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선의라면 동맹국을 대상으로 불법 도청을 해도 된다는 이야기인가”라며 “왜 도청당한 우리가 먼저 나서서 감추기에만 급급한 건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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