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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0 사망 41, 이런 시골 살려낸다…'워케이션'도 인구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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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관영 전북지사가 지난해 9월 6일 전북도청에서 "법무부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 사업 곰모 결과 전북에선 정읍·남원·김제시가 선정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김관영 전북지사가 지난해 9월 6일 전북도청에서 "법무부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 사업 곰모 결과 전북에선 정읍·남원·김제시가 선정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나포면 2155명…군산서 인구 제일 적고 평균 연령 60.5세 최고 

전북 군산시 나포면은 주민 2155명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사는 마을이다. 군산 전체 27개 읍·면·동에서 인구가 제일 적다.

그러나 주민 평균 연령은 지난달 기준 60.5세로 군산에서 가장 높다. 군산시 평균 연령(45.8세)보다 15세 많다. 2021년 나포면에선 아이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같은 해 41명이 세상을 떠났다. 나포면 인구는 2012년 2689명에서 10년 만에 20%(534명)가 줄었다. 군산시 관계자는 "나포면은 집집이 거의 어르신 한 명씩 사는데, 돌아가시면 빈집만 남는 구조"라며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절벽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했다.

인구감소지역 89곳 지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인구감소지역 89곳 지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합계 출산율 0.78명…"저출산 대책으론 한계"

전북 인구는 2019년 3월 심리적 방어선인 180만명이 무너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엔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마저 태어난 아이보다 사망자가 282명 더 많아 전북 14개 시·군 전체에서 자연 감소가 일어났다. 타지로 빠져나가는 사회적 인구 유출까지 겹치면서 현재 176만명대로 주저앉았다.

한국 전체 인구는 2019년 5185만명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어 현재는 5155만명이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기존 저출산 대책으로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체 인구가 주는 상황에서 비수도권 지자체끼리 주민등록인구 중심의 '정주인구' 늘리기 경쟁만 한다면 지역 간 인구를 빼가는 '제로섬 게임'으로 이어진다는 게 인구학계 시각이다.

인구학 박사인 조영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구와 미래 전략 TF' 공동 자문위원장이 지난해 5월 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TF 활동 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인구학 박사인 조영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구와 미래 전략 TF' 공동 자문위원장이 지난해 5월 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TF 활동 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조영태 교수 "'생활인구'로 패러다임 바꿔야"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출생한 세대)인 청년 숫자가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3년 태어난 세대)보다 30만~40만명 적다"며 "전체 인구가 주는데 모든 지자체가 옆 동네(지자체) 인구를 데려오는 건 현실적으로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구와 미래 전략 TF(태스크포스)' 공동 자문위원장을 맡았던 조 교수는 "일자리 등 자원이 몰린 서울에 청년이 가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며 "주소는 서울에 두더라도 지방에서 활동하며 활력을 불어넣는 '생활인구' 관점으로 인구 정책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했다.

달라진 생활 방식과 늘어난 이동성을 반영한 '생활인구'가 새로운 인구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올해부터 시행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통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뿐 아니라 체류하는 사람도 포함하는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했다. 특별법에선 주민등록인구·외국인등록인구·체류인구를 생활인구로 규정했다. 체류인구는 통근·통학·관광·업무·정기적 교류 등을 목적으로 지역을 월 1회 이상 방문하는 사람을 말한다.

백성현(오른쪽) 논산시장이 지난 1월 4일 올해부터 무료로 개방한 탑정호 출렁다리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백성현(오른쪽) 논산시장이 지난 1월 4일 올해부터 무료로 개방한 탑정호 출렁다리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증평군, 주변 주민도 도서관·수영장 할인 혜택

지자체마다 경제적·사회적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생활인구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5촌 2도'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충남도 시장·군수협의회는 지난달 23일 서산시청에서 '5촌 2도' 캠페인을 범도민 차원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중 5일은 농어촌에서, 2일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개념이다.

인구 3만8000여명인 충북 증평군은 이달부터 생활인구 늘리기 시범 사업에 나섰다. 전통시장·학군·교통 등 동일 생활권에 속하는 청주시 북이면과 괴산군 청안면·사리면, 진천군 초평면, 음성군 원남면 등 주변 4개 시·군 주민이 대상이다. 정세진 증평군 인구청년팀 주무관은 "생활인구로 지정된 주민은 증평에 있는 도서관·수영장·휴양랜드 등을 이용할 때 증평군민과 동등한 할인 혜택을 받는다"고 말했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 '증평장뜰시장'. [연합뉴스]

충북 증평군 증평읍 '증평장뜰시장'. [연합뉴스]

옥천군 '디지털 관광주민증'…"관광지 방문 이어져"

충북 옥천군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지난해 10월부터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발급하고 있다. 일종의 명예주민증이다. 옥천에 살지 않더라도 휴대전화 앱에서 주민증을 발급받아 장령산 휴양림과 전통문화체험관 등 지역 관광지에서 보여주면 체험·식음 등 10~30% 할인 혜택을 주는 사업이다.

옥천군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1만9502명이 관광주민증을 발급받았다. 옥천 인구(4만9300명) 39% 수준이다. 유정미 옥천군 관광정책팀장은 "관광주민증을 받고 실제 3899명이 옥천 관광지를 둘러봤다"며 "두세 번씩 방문하는 관광객도 있다"고 했다.

부산시 동구 아스티호텔 24층 '부산형 워케이션 거점센터' 내 업무 공간. 1인 업무에 초점을 맞춘 몰입형 좌석과 협업을 위한 회의형 좌석으로 구성됐다. [사진 부산시]

부산시 동구 아스티호텔 24층 '부산형 워케이션 거점센터' 내 업무 공간. 1인 업무에 초점을 맞춘 몰입형 좌석과 협업을 위한 회의형 좌석으로 구성됐다. [사진 부산시]

"인천에 '제2도시' 빼앗기나"…속 타는 부산시

인천보다 인구가 적어질 위기에 놓인 부산도 생활인구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부산 인구는 지난달 기준 331만5000명으로 인천(297만5000명)보다 많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2035년 인천 인구가 296만7000명으로 부산(295만9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부산시 동구 아스티호텔 24층 '부산형 워케이션 거점센터' 내 업무 공간. [사진 부산시]

부산시 동구 아스티호텔 24층 '부산형 워케이션 거점센터' 내 업무 공간. [사진 부산시]

업무+휴가 동시에…"체류인구 잡아라"

부산시는 '워케이션' 지원 사업을 통해 생활인구를 늘리기로 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평소 업무 공간을 떠나 일하면서 휴가를 즐기는 근무 형태를 말한다.

부산시는 지난해 행정안전부 지방소멸대응기금 60억원을 받아 인구감소지역인 동구·서구·영도구 등을 중심으로 워케이션 거점센터 1곳과 위성센터 3곳을 열었다. 대도시 기반 시설과 해양 관광 자원을 갖춘 강점을 살려 일과 휴양을 위한 체류 인구를 사로잡고 기업을 유치하는 게 목표다.

경북도가 추진하는 '2023 인구대반전 프로젝트' 중 경북 스테이 프로젝트는 경북을 제2 생활 거점으로 생각하는 대도시 주민이 대상이다. ▶경북형 작은 정원(클라인가르텐) 조성 ▶두 지역 살기 기반 조성 ▶1시·군-1생활인구 특화 프로젝트를 통해 생활인구를 유입하겠다는 취지다.

인구감소지역 지정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행정안전부]

인구감소지역 지정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행정안전부]

법무부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외국인을 인구로 흡수" 

수요자 특성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생활인구를 활용하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시는 KT와 함께 공공빅데이터·통신데이터를 결합해 집계한 생활인구를 기반으로 정책을 만들고 있다. 노인·외국인 정책을 수립할 때 노인이 주로 모이는 지역이나 외국인 밀집 지역 생활인구를 활용하는 식이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인구보다 행정 서비스 수요·공급을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자료"라고 했다.

정부도 외국인 노동자를 생활인구로 흡수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짓기도 어렵고, 공장도 돌릴 수 없는 인구감소지역이 늘어서다. 행안부는 2021년 10월 연평균 인구 증감률과 고령화 비율 등 8개 지표를 바탕으로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지정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인구감소지역에 일정 기간 의무 거주와 취업을 조건으로 외국인에게 거주(F-2)·동포(F-4) 비자를 발급해 주는 제도다. 김관영 전북지사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해 추진됐다. 근로 계약만 잘 유지하면 5년간 거주가 보장된다.

지난해 10월 강원 홍천군 내면 고랭지 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강원 홍천군 내면 고랭지 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日 관계인구, 獨 복수 주소제 운영

현재 전국 9개 시·도, 28개 시·군·구에서 시행하고 있다. 전북에선 지난해 9월 정읍·남원·김제시에 이어 12월 순창·고창·부안군이 법무부 공모에 선정됐다. 전북도는 오는 10월까지 외국 인력 400명을 모집해 제조업과 스마트팜, 보건·의료 분야에 우선 배정할 계획이다. 김관영 지사는 "외국인 인재가 전북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인구 감소를 상쇄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들이 전북에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모국어 통·번역, 고충 상담 등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생활인구 정책은 해외에서도 추진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일본은 고향납세 제도 등을 통해 특정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유지하는 외지인을 뜻하는 '관계인구(關係人口)'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한국이 올해 처음 도입한 고향사랑기부제도 비슷한 개념이다. 독일도 거주지로 등록된 지역(주거주지)과 실제로 생활하는 지역(부거주지) 등 2개 주소를 신고하는 복수 주소제를 운영하고 있다.

가령 평일에는 직장이 있는 베를린(주거주지)에 머물고, 주말에는 함부르크(부거주지)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30대 독일인 청년은 함부르크뿐 아니라 베를린에도 지방세를 납부한다. 대신 베를린 주택 임대료와 함부르크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교통비 등에 대한 세액 공제 혜택을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행안부 "생활인구 세부 기준 마련" 

최훈 행안부 지방자치균형발전실장은 "행안부는 올해 생활인구 산정 등에 관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일부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생활인구를 측정하는 시범 사업도 추진한다"며 "지역별 생활인구를 도출·관리할 수 있도록 통계청 등 관계부처와도 협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인구감소지역에 균등하게 예산을 투입할 게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는 지역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영태 교수는 "정부가 지방교부세를 줄 때 현재는 주민등록인구만 기준으로 삼는데 생활인구까지 더한다면 지방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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