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산불진화차가 물총이라면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물대포다. 한 번 뿌리면 웬만한 불길이 다 잡혔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진천항공관리소 소속 박준호(42) 공중진화대원이 1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진천팀’으로 불린 박 대원 포함 공중진화대 9명은 지난 8일 경남 합천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강원 원주 북부지방산림청에 배치된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몰고갔다.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이날 첫 실전 투입됐다. 이 차는 산림청이 올해 1대당 7억5000만원을 들여 총 3대를 장만했다. 이 진화차는 올해 첫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된 대형산불(피해 규모 100ha 이상) 현장에서 맹활약했다.
1분당 250L물 쏜다…일반 진화차 4배 위력
산불진화차는 이날 오후 10시30분쯤 투입되자마자 물대포를 뿜어댔다. 차에 연결된 25mm 호스에서 1분당 250L가 뿜어져 나오며 불길을 잡았다. 13mm 호스로 1분당 60L를 방수하는 일반 산불진화차보다 위력이 4배나 셌다. 한 번 뿜은 물은 불붙은 나무와 가지, 불씨가 남은 낙엽과 토양을 흠뻑 적셨다.
고성능 진화차를 활용한 진천팀 소속 공중진화대만으로, 약 2㎞의 방화선(防火線)까지 구축했다. 당시 합천 산불 현장에선 산불진화헬기는 일몰과 함께 철수한 상태였다. 박 대원은 “산불진화차를 가동해 보니 신무기를 발견한 느낌”고 말했다.
야간에 진화율 90% 넘겨
이날 고성능 산불진화차 등 장비 76대, 공중진화대 등 1500여명이 활약한 덕분에 야간 진화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오후 6시 기준 10%였던 진화율은 다음 날인 9일 오전 6시 기준 92%였다. 야간에 이렇게 진화율이 높아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일출과 함께 산불진화헬기까지 합세, 산불 발생 약 20시간 만에 합천 산불이 잡혔다.
여기에다 드론 등 첨단 장비 투입도 한몫했다. 열화상감지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은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실시간으로 점검, 진화 인력·장비를 효과적으로 투입할 수 있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산불진화차가 도입되기 전에는 야간 산불 진화를 사실상 중단해왔다"며 "밤에 진화작업을 하면 피해 면적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벤츠사 제품…물탱크 용량도 기존 3배
합천 산불에서 활약한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독일 벤츠사 제품이다. 이 차는 물탱크 용량(3500L)이 일반 산불진화차(800~1200L)의 3배 수준이다. 특수트럭인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구덩이, 암석, 쓰러진 나무 등 장애물이 즐비한 비포장 산길 도로도 달린다. 지면과 차체 사이 높이인 ‘최저지상고’가 46㎝ 이상으로, 일반 산불진화차(15㎝ 이상)보다 3배 높다. 산림청은 2027년까지 이 차를 32대로 늘릴 계획이다.
‘단비’가 살린 하동 산불…임도 없어 투입 못해
반면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합천에 이어 지난 11일 발생한 경남 하동 산불 현장에는 투입할 수 없었다.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이어서 차가 달릴 수 있는 임도(林道)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림당국은 불칼퀴와 20㎏ 등짐펌프를 멘 진화인력을 동원해 방어선을 구축했을 뿐 진화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진주시 소속 60대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이 진화 작업 도중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다행히 비가 쏟아지면서 불길이 잡혔다.
경남도 관계자는 “비 안 왔으면 불 못 잡았다”며 “산 경사가 거의 절벽 수준으로 험한 데다, 임도까지 없어 진화차나 쓰러진 진화대원을 태울 구조차도 투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산림청 “올해 산불진화임도 262㎞ 신설”
남상현 산림청장은 “갈수록 대형화하는 산불 진화를 위해서는 임도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라며 “국립공원 등 주요 산에 임도를 만들도록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1968년부터 국내에 조성한 임도는 2만4929㎞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독일은 산림 1ha당 54m, 오스트레일리아 50.5m인 반면 한국은 3.97m다.
특히 일반에 개방하지 않고 진화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취수장을 겸비한 ‘산불진화임도’는 지난해 말 기준 332㎞다. 산림청은 올해 사유림ㆍ공유림ㆍ국유림ㆍ국립공원 등 주요 산에 산불진화임도 262㎞를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