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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번에 불길 싹 잡는다" 벤츠 산불진화차, 합천 첫 투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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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 투입된 고성능 산불진화차. [사진 산림청]

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 투입된 고성능 산불진화차. [사진 산림청]

“일반 산불진화차가 물총이라면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물대포다. 한 번 뿌리면 웬만한 불길이 다 잡혔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진천항공관리소 소속 박준호(42) 공중진화대원이 1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진천팀’으로 불린 박 대원 포함 공중진화대 9명은 지난 8일 경남 합천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강원 원주 북부지방산림청에 배치된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몰고갔다.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이날 첫 실전 투입됐다. 이 차는 산림청이 올해 1대당 7억5000만원을 들여 총 3대를 장만했다. 이 진화차는 올해 첫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된 대형산불(피해 규모 100ha 이상) 현장에서 맹활약했다.

1분당 250L물 쏜다…일반 진화차 4배 위력

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의 한 야산에서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가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활용, 진화 작업 중이다. [사진 산림청]

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의 한 야산에서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가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활용, 진화 작업 중이다. [사진 산림청]

산불진화차는 이날 오후 10시30분쯤 투입되자마자 물대포를 뿜어댔다. 차에 연결된 25mm 호스에서 1분당 250L가 뿜어져 나오며 불길을 잡았다. 13mm 호스로 1분당 60L를 방수하는 일반 산불진화차보다 위력이 4배나 셌다. 한 번 뿜은 물은 불붙은 나무와 가지, 불씨가 남은 낙엽과 토양을 흠뻑 적셨다.

고성능 진화차를 활용한 진천팀 소속 공중진화대만으로, 약 2㎞의 방화선(防火線)까지 구축했다. 당시 합천 산불 현장에선 산불진화헬기는 일몰과 함께 철수한 상태였다. 박 대원은 “산불진화차를 가동해 보니 신무기를 발견한 느낌”고 말했다.

야간에 진화율 90% 넘겨

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가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활용, 진화 중이다. [사진 산림청]

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가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활용, 진화 중이다. [사진 산림청]

이날 고성능 산불진화차 등 장비 76대, 공중진화대 등 1500여명이 활약한 덕분에 야간 진화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오후 6시 기준 10%였던 진화율은 다음 날인 9일 오전 6시 기준 92%였다. 야간에 이렇게 진화율이 높아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일출과 함께 산불진화헬기까지 합세, 산불 발생 약 20시간 만에 합천 산불이 잡혔다.

여기에다 드론 등 첨단 장비 투입도 한몫했다. 열화상감지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은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실시간으로 점검, 진화 인력·장비를 효과적으로 투입할 수 있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산불진화차가 도입되기 전에는 야간 산불 진화를 사실상 중단해왔다"며 "밤에 진화작업을 하면 피해 면적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벤츠사 제품…물탱크 용량도 기존 3배

고성능 산불진화차(왼쪽)와 일반 산불진화차. [사진 산림청]

고성능 산불진화차(왼쪽)와 일반 산불진화차. [사진 산림청]

합천 산불에서 활약한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독일 벤츠사 제품이다. 이 차는 물탱크 용량(3500L)이 일반 산불진화차(800~1200L)의 3배 수준이다. 특수트럭인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구덩이, 암석, 쓰러진 나무 등 장애물이 즐비한 비포장 산길 도로도 달린다. 지면과 차체 사이 높이인 ‘최저지상고’가 46㎝ 이상으로, 일반 산불진화차(15㎝ 이상)보다 3배 높다. 산림청은 2027년까지 이 차를 32대로 늘릴 계획이다.

‘단비’가 살린 하동 산불…임도 없어 투입 못해

지난 11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에서 산불현장에서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진 산림청]

지난 11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에서 산불현장에서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진 산림청]

반면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합천에 이어 지난 11일 발생한 경남 하동 산불 현장에는 투입할 수 없었다.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이어서 차가 달릴 수 있는 임도(林道)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림당국은 불칼퀴와 20㎏ 등짐펌프를 멘 진화인력을 동원해 방어선을 구축했을 뿐 진화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진주시 소속 60대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이 진화 작업 도중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다행히 비가 쏟아지면서 불길이 잡혔다.

경남도 관계자는 “비 안 왔으면 불 못 잡았다”며 “산 경사가 거의 절벽 수준으로 험한 데다, 임도까지 없어 진화차나 쓰러진 진화대원을 태울 구조차도 투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산림청 “올해 산불진화임도 262㎞ 신설”

산불진화임도. [사진 산림청]

산불진화임도. [사진 산림청]

남상현 산림청장은 “갈수록 대형화하는 산불 진화를 위해서는 임도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라며 “국립공원 등 주요 산에 임도를 만들도록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1968년부터 국내에 조성한 임도는 2만4929㎞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독일은 산림 1ha당 54m, 오스트레일리아 50.5m인 반면 한국은 3.97m다.

특히 일반에 개방하지 않고 진화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취수장을 겸비한 ‘산불진화임도’는 지난해 말 기준 332㎞다. 산림청은 올해 사유림ㆍ공유림ㆍ국유림ㆍ국립공원 등 주요 산에 산불진화임도 262㎞를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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