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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미친 겨울 후폭풍…"이젠 못 피한다" 韓이 맞을 숙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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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산림청 공중진화대원이 9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에서 발생한 산불을 잡기 위해 밤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림청 공중진화대원이 9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에서 발생한 산불을 잡기 위해 밤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불 특별대책기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습니다. 2~3년 전부터 산불이 유난히 늘었거든요.”

산림청 정철호 대변인은 9일 경남 합천군의 산불 상황을 전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불길은 이날 다행히 잡혔지만, 과거 통상 3말4초(3월 말~4월초)이던 산불 특별대책 기간이 앞뒤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대책 기간의 시작은 3월 초를 향해, 종료는 4월 말을 향하고 있다. 기후 전문가들은 이를 한반도 기후변화의 한 현상으로 의심하고 있다.

“산이 연료처럼 말랐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기상관측 자료를 토대로 1~3월의 산불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 최근 20년(2000~2020년)이 과거 20년(1980~2000년)보다 산불 위험도가 높았다. 최대 50%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은 높아지고 습도는 감소하면서 가뭄이 일상화하는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겨울이 가물면서 백두대간에 내리던 눈의 양도 줄었다고 한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올겨울에도 백두대간의 적설량이 예년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될 정도였다. 눈이 쌓이지 않다 보니 침엽수의 잎이 바싹 말랐다. 마른 잎은 산불을 키우는 연료 역할을 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이제 한반도도 기후변화로 인해 대형 산불을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맞게 됐다”고 전망했다.

국립산립과학원이 산불이 난 경남 합천 지역의 ‘산림연료습도’를 측정한 결과 7.2%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산불의 연료 역할을 할 수 있는 산림의 수분 함량을 측정한 지표다. 10.5% 이하로 내려가면 산불 발생 위험도가 크게 증가한다. 연료습도가 7%대라는 건 작은 불씨만으로도 큰불로 번질 수 있을 정도로 해당 지역의 산림이 바싹 말랐다는 의미다.

“롤러코스터 겨울 기온”…1월 기온 변동 19.8도로 역대 최고

1월 13일 오전 겨울비에 침수된 광주 광산구 영광통 지하차도. 연합뉴스

1월 13일 오전 겨울비에 침수된 광주 광산구 영광통 지하차도. 연합뉴스

최근의 산불 증가를 포함한 한반도의 기후 현상에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겨울의 가장 추웠던 날과 가장 따뜻한 날의 기온 차이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다. 기상청의 ‘2022년 겨울철 기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초겨울인 12월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북극 한파가 한반도를 강타했고 2월에는 이상 고온으로 인해 한파일 수가 0.1일로 관측(1973년) 이래 가장 적었다. 기상청에서도 “겨울 기온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12월의 전월 대비 기온 하강폭은 11도로 가장 컸고 12월 초부터 매서운 날씨가 2주 이상 지속됐다. 반면, 1월 13일에는 평균 기온이 9.6도에 육박했다가 1월 25일 평균 기온은 -10.2도를 기록했다. 1월 내 기온 변동폭이 19.8도로 역대 최대였다.

1월에는 때아닌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1월 13일 하루에만 겨울철 전체 강수량의 40.4%에 해당하는 양의 비(28.9㎜)가 내렸고, 한라산에는 30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세계 각국 기후 붕괴

2월 17일 극심한 가뭄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가 메마르면서 곤돌라 운영이 중단됐다. 로이터=연합뉴스

2월 17일 극심한 가뭄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가 메마르면서 곤돌라 운영이 중단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각국에서도 올 겨울에 ‘기후 붕괴(climate breakdown)’로 불릴 정도로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이 잇따랐다. 미국 중서부에서는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최대 풍속 시속 105㎞의 눈폭풍이 덮치면서 64명이 사망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3주간 이어진 겨울 폭우로 20명이 사망하고 10억 달러(1조 3225억 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다. 유럽에서는 극심한 겨울 가뭄에 시달리면서 물 부족 위기에 직면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는 운하가 메말라 곤돌라 운영이 중단됐다.

2100년 산불 50% 증가할 듯

기후 재난은 전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초래한 기후 재난은 토네이도와 산불 등 18건에 달했고, 경제적 피해는 최소 1650억 달러(218조 2125억원)로 추정됐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각) 기후 관련 금융위기 자문위원회 개막 연설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기온 상승이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대형 산불 경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세계의 산불로 인해 방출되는 온실가스가 또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해 발표한 산불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와 토지사용 변화로 대형 산불이 2030년 14%, 2050년 30%, 2100년 50%로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극단적 가뭄·폭우→대형산불 악순환

8일 오후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리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나 산림당국이 진화 중이다. 경남소방본부

8일 오후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리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나 산림당국이 진화 중이다. 경남소방본부

한국도 세계적인 기후변화 추이와 비슷한 현상을 겪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일 밤 경남 합천군 용주면 산불 주민대피소에서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이한권(74)씨는 “아궁이에 불 때듯 연기가 나더니 20분도 안 돼 바람을 타고 불길이 10m 넘게 치솟아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불을 보자마자 119에 신고했지만, 산불은 초속 12m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고 한다. 산림 당국은 헬기 33대와 산불 진화대원 1509명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9일 오전에 불길을 잡았다. 축구장 230여 개에 해당하는 163ha(헥타르) 면적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217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이는 평년의 1.5배가량 많은 수치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산사태연구과 박사는 “기후변화로 인해 비가 안 올 때는 심각하게 안 오다가 내릴 때는 단기간에 왕창 쏟아져 내리는 극단적인 특징을 보인다”며 “지난해에도 1~6월까지 강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산림에 연료가 축적되면서 탈 수 있는 물질이 많아지고 대형 산불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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