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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으로 쥐락펴락…악몽 같은 中 과일 외교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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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주변국을 공략하고 섭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 바로 ‘과일’이다. 14억 인구인 만큼 과일 소비량이 어마어마하다. 중국이 먹으면 세계가 웃고, 중국이 거부하면 경제가 멈춘다. 과일 수입을 금지한다고 해서 중국이 큰 손해를 입는 게 아니다. ‘안 먹으면 그만’. 피해 없이 주변국을 쥐락펴락 구워삶을 수 있는 게 과일 시장이다.

대표적인 과일이 ‘파인애플’이다. 파인애플은 대만의 대표 농산물이다. 대만산 파인애플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중국이다.

그러나 2021년 3월, 중국은 대만으로부터 파인애플 수입을 중단했다. 대만산 파인애플에서 유해 물질이 나왔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지만, 당시 미국의 원조 약속을 받아낸 대만 제재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파인애플이 주로 재배되는 가오슝, 핑둥, 타이난 등 남부 지역이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주진보당 지역으로 꼽힌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의 수입 중단으로 대만 수출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2020년 생산량의 91.2%에 달했던 대중국 파인애플 수출은 2021년 3.1%로 급락했다. 중국의 금지령으로 당시 대만은 과일 수출 시장을 검토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21년 2월 가오슝의 한 파인애플 농장을 찾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 차이 총통은 중국의 파인애플 일방적 수입 중단 조치를 비난하며 국민들에 파인애플을 더 많이 소비해달라고 요청했다. 대만 대통령실

2021년 2월 가오슝의 한 파인애플 농장을 찾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 차이 총통은 중국의 파인애플 일방적 수입 중단 조치를 비난하며 국민들에 파인애플을 더 많이 소비해달라고 요청했다. 대만 대통령실

‘바나나’로도 위협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필리핀과의 외교 관계가 경색된 2012년, 필리핀산 바나나에 해충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수입 통제를 강화했다. 파인애플, 파파야 등의 검역도 대폭 강화하며 사실상 통관을 거부했다. 당시 바나나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 수출하던 필리핀은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2014년~2016년 사이 필리핀산 바나나의 대중 수출은 3분의 2 이상 급감했다.

또 다른 과일 무기, ‘두리안’이다. 두리안은 동남아시아의 정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과일이자 ‘수출 효자’ 상품이다. 2022년 중국은 82만 4천 톤 이상의 두리안을 수입했는데, 무려 40억 달러 규모다. 이는 2017년에 비해 약 네 배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중국 관세청). 영향력이 큰 과일인 만큼 중국이 동남아를 더욱 쉬이 흔들 수 있다.

중국의 두리안 사랑에 절대적 혜택을 받은 곳은 태국이다. 태국은 중국에 신선 두리안을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아세안 국가였다. 태국상공회의소대학(UTCC) 국제무역연구센터는 2021년 두리안이 1천870억 밧(약 6조 9천100억 원) 어치가 수출되며 수출품 중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태국에서 생산되는 두리안의 70~80%를 수입함에 따라 태국에서는 두리안의 가격이 상승해 2022년의 1~3월의 가격은 2018년 대비 63.9%가 올랐다. 생산량도 전년 대비 17% 증가한 140만 톤에 달했다.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해 7월부터 중국은 베트남에서 두리안을 수입했다. 태국산에 비해 운송 거리가 짧고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베트남 풀브라이트 대학의 응우옌 탄 쭝 박사는 “중국이 베트남 두리안을 수입한다는 것은 기타 농산물 수입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분석했다. 베트남 농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두리안 수입과 동시에 베트남산 패션프루트 수입을 시작하는 등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시기가 묘했다. 두리안을 수입하기 두 달 전인 5월, 베트남은 미국 주도의 경제 협력체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참여를 선언했다. IPEF는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출범시킨 경제협력체다. 당시 중국은 IPEF에 가입한 국가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일각에선 중국의 베트남산 두리안 수입은 지난 대만 파인애플 수입 금지 조치와 같이 과일을 경제적 강압과 외교적 무기로 내세운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랐다.

2019년 12월 27일 중국 남부 광시 좡족 자치구 둥싱의 완중국제도매시장에서 사람들이 베트남 상인에게서 두리안을 사고 있다. 신화통신

2019년 12월 27일 중국 남부 광시 좡족 자치구 둥싱의 완중국제도매시장에서 사람들이 베트남 상인에게서 두리안을 사고 있다. 신화통신

베트남이 끝이 아니다. 중국은 세 번째 두리안 수입국으로 필리핀을 택했다. 올해 1월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의 베이징 방문 이후 중국은 228억 달러어치의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농업 분야에도 17억 2000만 달러(한화 약 2조 1573억 원)의 투자금을 중국으로부터 유치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두리안도 포함됐다.

중국은 동남아로부터 더 많은 과일을 수입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이 말레이시아에서 팜유, 열대 과일 및 기타 농산물을 더 많이 수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특히 두리안을 먹었던 경험을 콕 집어 말했다.

중국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도 두리안을 수입할 수 있도록 중국 시장 진출 허가를 해주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일 수출입을 위한 루트도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중국-라오스 철도 첫 콜드체인 과일 전용 열차가 정식 개통했다. 라오스, 태국 등 동남아의 과일을 빠르고 대규모로 수입하기 위함이다. 이는 곧 언제든지  과일 수입을 철회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중국은 두리안을 정치적 압박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두리안을 무기로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심화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 밍장리(Mingjiang Li)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교수는 “두리안이 동남아와 중국 간의 강력한 경제 관계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외교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동남아 국가간의 경쟁을 더욱 심화시킨다. 말레이시아 전략국제문제연구소(Institute of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의 무역 및 경제 연구원 바하리는 “필리핀이 중국에 대한 두리안 수출 승인을 받으면서 말레이시아는 시장 점유율을 잃을 위험이 커졌다”고 말했다.

단일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전체 산업 체인을 취약하게 만든다. 두리안 수출이 중단되면 농업 분야에 큰 타격을 입는다. 과거 필리핀, 대만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베이징 대학의 동남아시아 연구 셰칸칸(謝侃侃)조교수는 “만일 중국이 불만을 품고 필리핀의 두리안 수입을 중단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정치적 분쟁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김은수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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