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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들의 질병은 그들탓만이 아니다[BOOK]

중앙일보

입력

연결 고통

연결 고통

연결된 고통
이기병 지음
아몬드

『연결된 고통』은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3년간 공중보건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재밌다. 7편의 에피소드 한 편 한 편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드라마 같다. 제목은 ‘(외국인 노동자를 치료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어울리겠다. 실화라는 점에선 다큐멘터리다. 의학뿐만 아니라 인류학과 철학까지 넘나드는 교양물이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환자가 늘어난다. 내 몸도 여기저기 비명을 질러댄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당뇨·고지혈·아토피 등 각종 질환은 내 탓인가, 조상 탓인가, 세상 탓인가. 몸이 아파 마음이 병난 것인가, 마음이 멍들어 몸이 병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질병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현상이다. 내 탓이자 세상 탓이다.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 ‘연결된 고통’이다.
저자는 외국인 노동자 치료를 계기로 인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인류학이라는 망원경으로 정통 의학이 간과하는 ‘달의 뒷면’을 탐색하며 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한국말을 잘해 조선족인 줄 알았던 중국 국적의 몽골계 중년 여성. 꾀병인 줄 알았더니 갑상선암이었다.

네팔 출신 남성은 심부전 환자다. 술이 독약이라는 걸 그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발 한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간다. 한국말이 유창한 편이지만, “죄송하다”는 말은 유난히 정교했던 그는, 얼마나 많이 죄송했던 걸까.
가나 출신 30세 남성은 기독교도다. 동시에 HIV 감염자다. 고국의 약혼자도 감염자다. 신앙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주장하며 결연히 치료를 거부한다. 주홍글씨를 새기고 치료를 받느니, 신앙 안에서 기도하며 기적을 꿈꾸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HIV 감염자를 낙인을 찍는 효과가 나는 치료 대상으로 대할 게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3년간 공중보건의로 일하며 외국인노동자들을 치료한 이기병씨. 사진 아몬드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3년간 공중보건의로 일하며 외국인노동자들을 치료한 이기병씨. 사진 아몬드

힘깨나 쓸 것 같은 중국인처럼 생긴 태국인은 요통과 변비로 고생하는 데 복부에 힘을 줄 때마다 실신을 한다. 50대 후반의 조선족 사내는 죽음을 오히려 해방처럼 맞이한다. 저자는 “삶이 형벌인 그에게, 죽음은 마지막 처방전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같은 생생한 인물과 임상을 통해 저자는 사회적 돌봄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 의료 행위의 이분법적 사고 등에 대한 고민을 펼쳐나간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공중보건의가 돼 '외노자' 환자의 몸에 청진기를 대는 듯한 느낌이다. 그 생생함이 흥미롭고, 조금은 고통스럽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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