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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인데 오이 안먹냐"…서울대가 '오싫모' 억울함 풀어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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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고추장 듬뿍 찍은 오이를 먹어보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현실은 국물에 1㎝만 담겨도 삼키기가 힘들죠. 안 먹는 게 아니라 정말 못 먹는 거예요.”

 지난 2018년 5월 5일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싫모)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오이를 모자이크한 음식 사진. 사진 오싫모 페이스북

지난 2018년 5월 5일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싫모)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오이를 모자이크한 음식 사진. 사진 오싫모 페이스북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싫모)’의 회원인 직장인 홍모(28)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지금도 특유의 쓴맛과 향을 강하게 느껴 오이를 먹지 못한다. “몇 살인데 편식을 하냐”는 핀잔을 들은 것도 여러 차례지만, 앞으로는 홍씨가 오이를 먹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은진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팀은 20일 오이의 쓴맛과 향을 분류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팀은 이기범 충남대 교수, 송기환 세종대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에서 한국·중국·일본·태국·프랑스 등 국내외 오이 유전자원 69종의 쓴맛과 향기 성분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이의 맛과 향은 과실의 길이와 색 등과 관계가 있으며, 성분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잡을 통해 쓴맛과 향을 조절한 디지털 육종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이를 먹지 못하는 사람은 유전적 영향으로 쓴맛과 향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강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오이 쓴맛은 주로 쿠쿠르비타신(cucurbitacin) C에서 비롯된다. 민감한 사람의 경우 둔감한 유형보다 100~1000배 더 강한 쓴맛을 느낀다. 오이 향의 주성분인 노나디에날(nonadienal)의 경우에도 후각 수용체가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이 더 거북하게 느낄 수 있다.

지난해 6월 송기환 세종대학교 바이오산업자원공학과 교수가 운영하는 경기 안성시 오이 재배장의 모습. 사진 서울대 원예산물 생리 및 관리학 연구실

지난해 6월 송기환 세종대학교 바이오산업자원공학과 교수가 운영하는 경기 안성시 오이 재배장의 모습. 사진 서울대 원예산물 생리 및 관리학 연구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원의 오이 교배로 얻은 후보품종 ‘F1’은 쓴맛이 없고, 향기 성분의 함량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오이는 골절 위험을 낮추는 비타민 K 등 다양한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호불호 음식으로 꼽힌다. 유전적 차이로 인한 맛과 향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탓에 일상 음식에 섞여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9월 18일 페이스북 페이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싫모)'에는 오이를 빼달라는 주문지가 게재됐다. 사진 오싫모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2020년 9월 18일 페이스북 페이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싫모)'에는 오이를 빼달라는 주문지가 게재됐다. 사진 오싫모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2017년 만들어진 ‘오싫모’의 회원 수는 약 9만 4000명에 달한다. 오이가 논란의 식자재가 되면서 음식 사진에서 오이를 지우는 ‘오자이크(오이+모자이크)’라는 신조어가 나왔고, 지난해엔 글로벌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기업 더핑크퐁컴퍼니에서 ‘오싫모 니니모’라는 노래도 나왔다. 고양이 니니모가 “여러분을 오이로부터 해방하는 그날까지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한다.

이은진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오이의 산업적‧경제적 가치가 큰 만큼 더 많은 소비가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고 연구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연구 논문은 세계적 권위의 국제학술지 ‘푸드 케미스트리’ 온라인판에 게재됐으며, 내달 30일 지면에도 수록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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