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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1) 조조, 부친의 원한을 갚고자 서주를 도륙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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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는 왕윤을 죽이고 장안 입성에 성공하자 헌제를 위협하여 엄청난 벼슬을 차지했습니다. 이각은 거기장군(車騎將軍), 곽사는 후장군(後將軍)이 되어 절월(節鉞)을 갖고 조정을 주물렀습니다. 번조는 우장군(右將軍), 장제는 표기장군(驃騎將軍)이 되었습니다. 동탁의 일개 수하들이 동탁의 죽음을 핑계로 쿠데타에 성공하였으니 얼마나 기세가 등등하겠습니까. 자신들의 벼슬을 거리낌 없이 적어내 황제의 결재를 받았으니 이미 동탁을 능가한 셈입니다.

이각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각 [출처=예슝(葉雄) 화백]

반란군들은 동탁의 시신 중 살가죽과 뼈 일부분을 수습해 장사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되자 천둥 번개와 장대비가 퍼부어 동탁의 관을 박살 냈고, 시신은 나뒹굴었습니다. 비가 그친 후 다시 장사를 지내려 하자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이에 동탁의 시신은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박종화는 이 부분에 대해 한 문장을 더 추가했습니다.

먼젓번에는 사람들이 동탁의 배꼽을 도려내 등불을 켰다. 이것은 인화(人火)요, 장사 지낼 때는 하늘이 동탁의 시신을 태워버렸다. 이것은 천화(天火)라 할 수 있다. 하늘과 사람이 다 함께 동탁을 미워해서, 이같이 천벌과 인벌을 준 것이다.

이각과 곽사가 정사(政事)를 좌지우지하자 서량태수(西涼太守) 마등과 병주자사(幷州刺史) 한수가 10여만 대군을 이끌고 ‘역적토벌’을 기치로 장안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이각과 곽사 등이 이들을 막아낼 계책을 논의하자 참모인 가후는, ‘도랑을 파고 보루를 쌓은 채 굳게 지키면 식량이 바닥나 돌아갈 테니 그때 공격하면 이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이몽과 왕방이 반대하며 당장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몽과 왕방은 1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기세 좋게 나아가 서량의 군대와 싸움을 펼쳤습니다. 마등은 아들 마초를 내보냈습니다. 마초는 17살의 소년장수입니다. 얼굴은 관옥 같고 눈은 샛별 같고, 체격은 범과 같고 팔은 원숭이 같고, 배는 표범 같고 허리는 이리 같다고 했습니다. 마초의 모습이 상상되시는지요.

이몽을 말에서 잡아채는 마초.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몽을 말에서 잡아채는 마초. [출처=예슝(葉雄) 화백]

왕방이 마초를 깔보고 덤벼들었다가 마초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이몽은 마초를 뒤에서 공격하려다가 마초의 긴 팔에 사로잡혔습니다. 이각과 곽사는 두 부하가 모두 죽자 가후의 말을 믿고 지키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후의 예상대로 마등과 한수는 철군을 결정합니다. 군량도 바닥나고 내응키로 했던 비밀도 발각됐기 때문입니다.

장제와 번조가 마등과 한수를 추격해 공격했습니다. 한수가 뒤쫓아 오는 번조에게 동향(同鄕)끼리 원수가 되지 말자고 사정하자 번조는 한수를 놓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꼭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번조가 한수와 교마어(交馬語)를 나눈 것을 이각의 조카 이리가 보고 일러바쳤습니다. 이각은 장제와 번조를 불러 주연을 베풀다가 번조를 참수했습니다.

황건적이 다시 일어나 청주(靑州)를 장악하자 동군태수(東郡太守)인 조조는 제북상(濟北相) 포신과 함께 황건적을 무찌릅니다. 이 과정에서 포신은 전사하고 조조는 승승장구하여 백여 일 만에 청주의 황건적을 평정합니다. 30만 명의 병사가 항복하고 100만 명의 백성이 조조에게 귀속됐습니다. 조조는 항복한 병사 중에서 정예병을 뽑아 ‘청주병(靑州兵)’을 구성했습니다. 이후 청주병은 조조군의 핵심부대로 성장합니다.

조조의 명성이 높아지자 조정에서는 조조를 진동장군(鎭東將軍)으로 임명했습니다. 조조는 구현령(求賢令)을 내려 유능한 인재를 맞이했습니다. 순욱, 순유, 정욱, 곽가, 만총 등 내로라하는 명사와 인재들이 이때 조조를 주군으로 모시며 따랐습니다. 특히, 순욱을 만나본 조조는 ‘나의 자방(子房)’이라며 기뻐했습니다. 자방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최고의 참모인 장량의 자(字)입니다. 유방은 초한 전쟁에서 승리한 후 다음과 같이 장량을 평가했습니다.

장량은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거두게 했다.

모종강은 조조가 순욱을 ‘나의 자방’이라 부른 것에 대하여 한마디 했습니다.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한고조에 비기는 말이다. 어찌 구석(九錫)이 주어진 다음에야 그에게 역심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겠는가? 그러나 순욱은 이때 의심하지 않고 후일에 와서야 의심했다. 일찍이 간과하지 못한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방(子房)은 ‘뛰어난 책사(策士)’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순욱을 얻은 조조도 이러한 뜻으로 기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종강은 이처럼 조조를 비꼬았습니다. 왜일까요. 나관중과 모종강은 연의를 ‘촉한정통론’의 입장에서 집필했습니다. 반대편인 조조는 언제나 간웅이고 천하의 악인으로 표현했습니다. ‘조조 악인 만들기’에 집중하다 보니 소설을 떠나 회평(回評)에서도 기회만 되면 악행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조조는 휘하에 인재와 장수를 영입해 위세가 올라가자 낭야국(琅邪國)에 있는 부친 조숭을 모셔오기로 했습니다. 조숭은 40여 명의 가솔과 함께 서주(徐州)를 지나 조조가 있는 연주(兗州)로 향했습니다. 서주목인 도겸은 조조의 부친이 관할지역을 지나가자 성심성의를 다해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부하장수인 장개에게 호송까지 시켰습니다. 장개는 황건적 출신입니다. 조숭 일가의 재물을 보자 도적의 본색이 드러났습니다. 삼경이 되자 장개와 부하들이 조숭 일가를 덮쳤습니다. 조숭은 첩과 함께 담장을 넘어 도망치려 했지만 첩이 뚱뚱해 담장을 넘지 못하자 뒷간에 숨었습니다. 하지만 곧 발각되고 조숭 일가는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장개와 부하들은 조숭의 재물을 빼앗아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서주목 도겸. [출처=예슝(葉雄) 화백]

서주목 도겸. [출처=예슝(葉雄) 화백]

일은 너무도 크게 벌어졌습니다. 조조는 3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주로 진격했습니다. 모든 군사가 상복을 입고, ‘원수를 갚고 원한을 씻자(報仇雪恨)’는 깃발을 펄럭였습니다. 도겸은 호의를 베푼 일이 되레 죽음을 맞게 됐습니다. 그는 조조에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조조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조조는 이미 결정하고 명령했습니다.

서주성을 함락하거든 성안의 백성을 남김없이 도륙해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라.

조조의 최대 악행인 ‘서주대학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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