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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0) 초선의 미인계에 봉의정서 울려퍼진 승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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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은 자신의 애첩 초선을 탐내는 여포가 죽도록 미워졌습니다. 참모인 이유가 춘추시대 초장왕(楚莊王)의 ‘절영지회(絶纓之會)’ 고사를 예로 들며 동탁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는 초선을 여포에게 주면 그가 목숨을 다해 동탁을 모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동탁도 이유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동탁이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겠다고 하자 초선은 즉시 보검으로 자결하려 했습니다. 이를 두고 보고만 있을 동탁이 아니지요. 동탁은 얼른 칼을 빼앗고 초선을 감싸 안으며 말했습니다.

"내 너를 놀리느라 우스갯소리를 한 것이니라."

초선은 동탁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면서 계속해서 연기를 펼쳤습니다. 동탁은 초선의 이런 모습에 흠뻑 취해 좀 전에 이유가 말한 것은 연기처럼 잊었습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내 어찌 차마 너를 버리겠느냐!”

초선의 실감 나는 연기에 삼혼칠백(三魂七魄)이 녹아나는 동탁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묘사한 것은 고우영입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제 몸이 귀해서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신으시던 신발을 이리의 발톱에 던지시면… 나리의 높고 높은 지체에 흠이 갈까 두려운 탓입니다."

"…초선아, 네가 나를 그토록 받들었…더…냐? 큰일 날 뻔 했구나. 하마터면 이 보물을 개에게 줄 뻔 했어!"

동탁은 이유의 제안을 부자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노합니다. 동탁이 결국 여인의 손에 죽게 될 것을 예견한 이유는 탄식합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동탁은 장안의 미오성으로 초선을 데려갑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여포는 피가 거꾸로 솟구칠 지경이었습니다. 왕윤이 여포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자 여포는 노기가 충천했습니다. 왕윤은 여포가 동탁을 죽이고 싶어도 부자지정(父子之情)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을 알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장군의 성은 여(呂)씨이고 태사의 성은 동(董)씨 이외다. 화극을 던지며 장군을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무슨 부자의 정이 있겠소이까?”

“사도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이 여포가 일을 그르칠 뻔 했습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는 시 한 편이 초선을 극찬합니다.

사도가 미인을 빌어 묘한 계책을 내니 司徒妙算託紅裙

무기도 쓰지 않고 군사도 필요 없네 不用干戈不用兵

세 영웅은 호뢰관서 헛된 힘만 썼구나 三戰虎牢徒費力

승전보는 봉의정에서 울려 퍼지네 凱歌却奏鳳儀亭

여포의 결심을 지켜본 왕윤은 동탁 처단을 위한 다음 단계로 돌입합니다. 여포와 동향(同鄕)인 기도위(騎都尉) 이숙을 동탁이 있는 미오성으로 보냈습니다. 이숙은 황제가 선위(禪位)를 하려 한다며 동탁을 장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동탁은 초선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는 초선을 귀비(貴妃)에 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초선은 기쁜 마음에 절하며 사례했습니다. 동탁이 초선의 가슴속 기쁜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 절이 곧 죽어 없어질 역적에게 한 마지막 인사였다는 것을.

동탁은 기뻐하며 장안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용이 몸을 칭칭 감는 꿈을 꾸고,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말이 고삐를 끊어도, 이 모두가 자신이 황제에 오르게 될 징조라는 풀이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열흘도 못 가서 동탁이 죽는다는 내용의 동요(童謠)도, 한 도인이 여포(呂布)를 암시하는 '입 구(口)'자 두 개가 적힌 베(布)를 들고 다녀도, 동탁은 황제가 될 것이란 들뜬 마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동탁은 입궐과 동시에 여포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양아들인 여포에게 죽는 동탁 [출처=예슝(葉雄) 화백]

양아들인 여포에게 죽는 동탁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탁은 여포를 진짜 자신의 피붙이 아들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동탁은 여포가 ‘자식’이라는 이유로 애첩을 주지 않았고, 화극을 던지며 ‘죽이겠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이내 ‘없던 일로 하자’며 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탁은 그의 자식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자신의 배만 불렸습니다. 그저 여포가 ‘양부로 모시겠다’는 말만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여포도 처음에는 그러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부인 동탁이 점점 자신을 의심하고 미워하자 여포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포는 사리사욕을 위해 첫 양부인 정원을 죽인 바 있습니다. 모든 것은 처음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두 번째 양부인 동탁은 황제를 마음대로 갈아치우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하는 대역무도(大逆無道)의 죄인입니다. 동탁을 처단하는 것은 국난을 타개하는 것이기에 명분도 훌륭했습니다. 여포가 화극으로 동탁의 목을 겨눌 때 동탁은 여포에게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그때서야 자기가 여포를 정원에게서 데려올 때의 일이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철석같이 아들로 믿었기 때문에 배신감이 더 컸겠지요. 이 어찌 어리석고 미련한 자의 말로가 아니겠습니까.

대학자 채옹 [출처=예슝(葉雄) 화백]

대학자 채옹 [출처=예슝(葉雄) 화백]

왕윤은 동탁의 시신을 저잣거리에 공개했습니다. 한 병사가 호의호식(好衣好食)으로 살찐 동탁의 배꼽에 불을 놓아 등불로 삼았습니다. 모두가 시신에 침을 뱉고 욕했습니다. 이때, 시중(侍中) 채옹이 시신 앞에서 곡을 했습니다. 왕윤이 꾸짖으며 그 죄를 묻자, 채옹은 ‘동탁이 나의 학문과 재능을 인정하고 좋은 대우를 해 준 것에 대한 예의로 울었을 뿐’이라며 속죄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관원도 대학자인 채옹의 사정을 이해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왕윤은 모두의 탄원을 듣지 않고 채옹을 죽였습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은 예시였습니다. 모종강은 채옹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권좌에 있을 때는 그 후광을 만끽하다가 권세가 떨어지면 언제 보았냐는 듯이 돌아서고, 심지어 창을 들이대거나 돌을 던지는 등 못하는 짓이 없는 요즘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 결국 이런 소인배들에 비하면 채옹은 군자다.'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과 곽사, 장제와 번조는 섬서(陝西)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사면을 요청했습니다. 왕윤은 이들만은 사면해 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쫓기던 쥐가 궁지에 몰리면 어떡하나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참모는 가후였습니다. 가후는 ‘장안진공책(長安進攻策)’을 내놓았습니다. 장안에 쳐들어가 싸우다가 불리하면 그때 도망치면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 왕윤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군사를 모았습니다. 가후의 전략은 적중하여 이각과 곽사 등은 여포군을 무찌르고 장안에 입성합니다. 여포는 사태가 위급해지자 가족도 버려둔 채 1백여 명의 기병만 이끌고 원술에게 갔습니다. 왕윤은 여포의 권유에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왕윤은 오히려 이각과 곽사에게 호통을 치며 장렬하게 죽었습니다.

문루에서 뛰어내려 자결하는 왕윤 [출처=예슝(葉雄) 화백]

문루에서 뛰어내려 자결하는 왕윤 [출처=예슝(葉雄) 화백]

왕윤은 초선과 여포를 이용해 동탁 제거라는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동탁처럼 행동했습니다. 동탁의 추종자들을 모두 학살하고 선비의 예의를 지킨 채옹도 죽였습니다. 채옹이 초가에서 역사를 기록하며 지내겠다고 하자 왕윤은 채옹을 사마천을 빗대어 비방했습니다.

옛날 무제께서 사마천을 죽이지 않아 어떻게 되었소이까? 그가 사기(史記)를 지어 비방하는 글들이 후세에까지 전해지게 되었소. 지금 국운이 쇠미(衰微)한 때에 간신을 황제 곁에 두게 한다면 우리 모두 욕바가지를 쓰게 될 것이오.

왕윤의 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채옹을 죽여야만 했던 이유가 드러납니다. 결국, 동탁이 죽은 후 자기가 벌인 악행들이 채옹에 의해 낱낱이 기록되는게 싫었던 것이지요. 연환계를 통해 ‘차도살인(借刀殺人)’을 한 왕윤이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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