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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분수대

“명백한 불법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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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성민 정치에디터

윤성민 정치에디터

일제 식민공간 속 조선인은 희생자이기만 했을까. 완바오산(萬寶山) 사건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1931년 4월 만주 완바오산 인근에서 황무지 개간을 위한 수로 공사를 두고 조선 농민과 중국 농민의 갈등이 있었다. 조선 농민은 일본의 무력을 등에 업어 사건을 유리하게 풀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결됐다. 그런데 그해 7월 2일 조선 농민이 중국인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가짜 뉴스가 보도됐다.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은 한반도로 번졌다. 이후 3일부터 30일까지 서울·평양·개성 등에서 조선인이 화교를 학살·약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제연합(UN)의 전신인 국제연맹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 화교 127명이 숨지고, 393명이 다쳤다. 실제 피해는 더 컸다고 한다. ‘식민 지배 피해자’인 조선인 1000여 명이 ‘학살 가해자’로서 징역형과 벌금형을 받았다. 어떤 역사는 피해와 가해가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렇지만 희생자로서의 기억은 가해의 기억을 압도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가짜 뉴스로 재일 조선인이 학살당한 간토 대지진 사건은 한국에서 중요하게 기술된다. 그러나 완바오산 사건을 비롯해 2차 세계대전 포로감시원 등으로서 이웃 국가에 혹독했던 조선인에 대한 기술은 역사서 밖으로 밀려나 있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이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고 부른다. 자기 민족의 희생만 절대화하는 인식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양성하고, 가해의 기억을 탈색한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희생자 의식은 팔레스타인 공격의 정당성으로 작동하고, 일본의 원자폭탄 경험은 식민 지배 때 악행의 기억을 희석한다.

한국은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때때로 가해자이기도 했다. 지난 7일 한국 법원은 베트남 전쟁 당시 퐁니 마을에서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 74명 학살에 대해 정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아직 베트남 희생자에게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엔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는 댓글도 보인다. 한국이 식민 지배 등 여러 희생의 역사를 겪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건에서 ‘집합적 무죄’(collective innocence)가 인정되는 건 아니다. ‘나’의 희생이 ‘너’의 희생보다 숭고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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