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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다시, 몸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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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고대 그리스에서 신체 단련은 시민의 의무였다. 이상적인 몸은 조화롭게 발달한 심신의 표상이었다. 몸을 만드는 건 전쟁에 나가 승리할 확률을 높이는 훈련이기도 했다. 고대 올림픽은 제우스 신을 위한 제전이었다.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선수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올림픽 출전 선수뿐 아니라 일반인에도 신체 단련이 권장됐다. 그리스 시민은 체육관에서 벗은 몸으로 운동했다. 근육질 선수들이 나신으로 경기하는 모습은 그림과 조각 등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대인도 탄탄한 몸을 갈구한다. ‘몸짱 아줌마’ 정다연씨가 등장했던 게 20년 전이다. 30대 후반의 평범한 주부가 운동으로 몸짱이 됐다는 스토리에 대중은 열광했다. 이후 20년, 근육으로 다져진 몸에 대한 선망은 점점 커진 듯하다. 스타나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 사이에서도 널리 퍼진 ‘바디 프로필’ 촬영 붐이 대표적인 예다. 몇 달씩 고강도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근육을 조각하듯 몸매를 만든다. ‘사진빨’을 위해 제모와 태닝을 하고, 전문 스튜디오에서 의상·헤어·메이크업까지 갖춰 촬영한다. 인스타그램에 ‘바디프로필’ 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430만 건에 달한다. ‘오늘의 운동 완료’라는 뜻의 ‘오운완’ 태그는 460만 건을 넘어섰다.

MBC가 만든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은 이런 트렌드를 영리하게 포착했다. 상금 3억원을 두고 참가자 100명이 최고의 몸을 겨루는 서바이벌이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을 비롯해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몸을 지닌 이들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참가자들의 몸과 근육의 움직임, 땀방울에 집중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 돌아간 듯 육체와 육체가 맞붙는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승부는 글로벌 시청자도 사로잡았다. 지난주, 한국 예능으론 처음으로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찍었다.

잘 가꾼 몸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어낸 전리품이기도 하다. 첫 회에서 제작진은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내놨다. 그러나 프로그램 바깥에선 약물로 근육을 키운 ‘로이드’ 참가자 논란 등으로 시끄럽다. 건강을 위한 몸이 아니라, 전시하기 위한 몸을 만드는 데는 돈이 들고 부작용도 따른다. 다시 돌아온 몸의 시대, 윤리적이고 정직한 몸의 기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