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본경선 시작부터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3일 제주에서 열린 첫 권역별 합동연설회에선 김기현·안철수 의원의 신경전이 한층 더 격화됐다.
김 의원은 발언대에 서서 “대통령과 자꾸 어긋난 길로 가고 ‘당정 분리’라고 하면서 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견제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가 왜 여당을 하느냐”며 “대통령과 손발이 맞는 힘 있는 대표가 돼야 일을 제대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이른바 ‘윤심 적자(嫡子)’로 내세운 것이다.
차기 지도부의 핵심 목표를 ‘당 안정화’로 꼽은 김 의원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다”며 “한 번도 당을 떠나지 않은 사람, 정통보수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있는 저 김기현이 돼야 당이 안정되지 않겠느냐”고도 주장했다. 대선 후보 단일화 이후 비로소 국민의힘에 합류한 안 의원을 겨냥한 것이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도 ‘대통합’을 공약했다. 김 의원은 “김나(김기현·나경원) 연대에 이어 김안(김기현·안철수) 연대, 김천(김기현·천하람) 연대, 김황(김기현·황교안) 연대를 해야 한다”며 “(당선되면) 이들 후보를 ‘당 대표 정무 고문’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안 의원은 마이크 앞에 서서 “줏대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당 대표, 힘 빌려 줄 세우기 시키고 혼자 힘으로 설 수 없는 당 대표, 이런 당 대표로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이번 전당대회는 안철수와 김기현 후보, 두 사람 중 선택하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강점인 ‘대중성’을 내세운 것이다.
김 의원의 지난 11일 ‘탄핵 발언’도 재차 소환했다. 안 의원은 “당 대표 후보가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는 정신 상태라면, 이런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면, 이런 당 대표로는 결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이렇게 부끄러운 당 대표를 원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의원은 “누가 더 도덕적이고 적합한 사람인지 더 많은 토론과 경쟁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 뒤로 숨지 말고 당당하게 나와서 오직 실력으로 저와 대결하기를 요구한다”며 김 후보와의 양자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자신을 ‘정통 보수 적자’라고 강조하는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요즘 KTX 울산 역세권 연결 도로 관련된 의혹이 제보됐는데, 제대로 해명해야 한다”며 김 의원에게 공세를 폈고, 안 의원에겐 “정체성이 불분명한 뻐꾸기 후보다. 보수의 가치를 체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쏘아붙였다.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정견 발표 시간에 상대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를 자제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천 위원장은 “우리가 민생 위기를 책임지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의 신뢰와 총선 승리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핵’ 발언을 둘러싼 공방은 연설회장 밖에서도 종일 이어졌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라디오에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불협화음 때문에) 당내 분란이 생겨서 쪼개지고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던 탄핵이라는 아픈 과거가 있었다”며 “그런 과거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얘기한 것인데, (안 의원이) 그걸 마치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우려된다는 식으로 곡해했다”고 주장했다.
친윤계도 진화에 나섰다. 장제원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얼마나 많은 충돌 있었나”라며 “당정이 분리돼 계속 충돌할 때 정권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됐는지를 강조한 발언 같다”며 김 의원을 감쌌다. 익명을 요구한 친윤 재선 의원은 “전통적 지지층이 탄핵이란 단어 자체를 불경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더 이상 확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경쟁자들은 계속해 탄핵 발언을 파고들었다.
안 의원은 정견 발표 뒤 취재진과 만나 장 의원의 해명에 대해 “한마디로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그러고는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뒤 (그 언급이 오히려) 당의 화합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걸 어떤 국민이 믿겠느냐”고 반박했다. 천 위원장은 “(김 의원이) 대통령이 탄핵 당할 수 있다는 협박을 당원에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전 대표도 제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은 다른 후보에 가한 일침처럼 김 후보 측에도 재발 방지에 대한 강한 요구를 전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권 주자 간 공방이 거세지자 대통령실은 “대통령을 전당대회에 끌어들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그런 행동을 자제해달라는 메시지를 여러 번 낸 것 같다”는 반응을 내놨다. 다만 탄핵 발언을 꺼낸 김 의원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지난 10일 예비경선(컷오프) 결과를 놓고도 공방이 이어졌다. 안 의원은 김 의원이 자신을 ‘예비경선 1위’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증거를 낸다면 선거법 위반이고 증거가 없다면 허위사실 유포”라며 “후보를 사퇴할 만한 중대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 의원은 “언론에 김기현이가 1등이고 2등과 격차가 크다는 보도가 나왔으니 마음이 다급한 것 같다”고 되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