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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사 때 나오는 '호산구'가 뭐예요? 천식환자 목조르는 공포 [건강한 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7면

중증 천식과 호산구성 천식

매년 천식으로 25만여 명 숨져
기관지 만성 염증, 기도 변형 유발
한 달에 약값으로 수백만원 부담

급작스럽게 호흡곤란이 생긴 사람이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급히 L자형 키트를 꺼낸다. 입에 대고 버튼을 누르면서 숨을 몰아쉰 후엔 호흡이 진정되고 안정을 찾는다. 영화·드라마 등 미디어에 비치는 천식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같은 장면을 봐온 많은 사람의 머릿속엔 두 가지가 각인된다. 천식은 언제든 급박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 질환이라는 것, 그리고 흡입기 하나로 잘 조절되는 질환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천식 환자에겐 틀리지 않은 내용일 수 있다. 하지만 중증 천식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전자는 여전히 맞지만 후자는 틀리다. 흔히 알고 있는 기관지확장제나 스테로이드로 간단히 조절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3억 명 이상의 천식 환자 중에서 매년 25만여 명이 사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증 환자, 스테로이드 부작용 위험

천식은 잘 알려진 것처럼 알레르기 원인 물질이나 자극성 물질에 노출됐을 때 기관지에 생긴 만성 염증으로 기도가 수축해 숨을 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질환이다. 호흡곤란뿐 아니라 가슴 답답함, 마른기침, 숨 쉴 때 쌕쌕거리는 천명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처음엔 증상이 심하지 않지만 재발과 악화를 반복하면 중증으로 진행한다.

‘중증 천식’은 잘 치료되지 않는 천식 중에서도 가장 상위 개념이다. 2019년 세계천식기구(GINA)는 진료지침에서 ▶조절되지 않는 천식 ▶난치성 천식 ▶중증 천식을 구분해 정의했다. 조절되지 않는 천식은 빈번한 증상으로 1년 2회 이상 경구용 스테로이드가 필요하거나 1회 이상 입원할 정도의 천식, 난치성 천식은 치료 순응도가 낮은 환자를 포함해 중간 또는 고용량 흡입 스테로이드와 다른 치료제 사용에도 불구하고 조절되지 않는 천식을 말한다.

반면에 중증 천식은 고용량 흡입 스테로이드와 다른 치료제 사용, 높은 순응도에도 불구하고 조절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김세훈 교수는 “천식 치료를 총 5단계로 나누고 단계가 높아질수록 치료제의 강도와 용량이 세지는데 4~5단계가 중증에 해당한다”며 “고용량을 안 쓰면 유지가 힘들거나 그럼에도 조절이 안 되는 환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천식 환자 10명 중 1명은 이 같은 중증 천식으로 본다. 아주대병원 알레르기내과 신유섭 교수는 “중증 천식 환자는 전체 천식 환자 중 적게는 5%, 많게는 15%까지로 보는데 평균적으로 10% 정도가 해당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 중증 환자는 당뇨병, 골다공증, 감염 취약, 부신 기능 부전 등 마지 못해 쓸 수밖에 없는 고용량 스테로이드의 심각한 부작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중증 천식 중 대표적인 것이 ‘중증 호산구성 천식’이다. 호산구는 원래 기생충 감염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백혈구의 일종인데, 이 호산구가 천식을 일으키는 염증 세포로 작용한 것이 바로 호산구성 천식이다. 실제 임상에서 천식 환자 중 호산구가 혈액 마이크로리터당 300개 이상인 경우를 호산구성 천식으로 본다. 김 교수는 “알레르기 반응에서 다수의 경우 호산구라는 염증 세포가 증가하는데, 이로 인한 염증으로 천식이 생긴 것이 호산구성 천식”이라고 말했다. 국내 천식 환자 중 60~7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산구 수치 높을수록 증상 악화

특히 호산구는 천식 증상 유발이나 호흡기 기능 이상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란셋에 발표된 영국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약 13만 명의 천식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혈중 호산구 수치가 높을수록 중증 악화 위험이 커지고 천식 증상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호산구성 천식이 중증으로 악화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고용량 스테로이드에도 잘 조절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중증 호산구성 천식 환자의 경우 특히 악화가 잦고 스테로이드 의존성이 생겨 부작용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신 교수도 “(스테로이드를) 안 쓰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절대 컨트롤되지 않는다”며 “심하면 먹는 스테로이드를 처방하기도 하지만 부작용 때문에 의사도 환자도 꺼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이런 환자를 위한 생물학적 제제(메폴리주맙 등)들이 개발돼 있다. 호산구의 성장과 활성화를 조절하는 사이토카인 ‘인터루킨5(IL-5)’이 호산구와 결합하는 것을 막아 호산구 증식을 억제하고, 호산구 과다 생성으로 악화하는 증상을 완화한다. 효과도 좋은 편이다. 김 교수는 “생물학적 제제를 쓰면 모든 환자의 호산구 수치가 정상으로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이들 약제는 천식 악화를 막고 응급실 방문과 입원을 줄이는 데다 폐 기능 개선, 환자의 스테로이드 요구량 감소, 환자 삶의 질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약값이 걸림돌이다.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는 한 달에 많게는 몇백만원을 약값으로만 부담해야 한다. 즉 스테로이드 부작용이나 고가의 약값 중 하나는 택해야 하는 셈이다. 신 교수는 “천식 환자는 치료를 제대로 안 하면 기도의 해부학적 구조가 변해 불가역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며 “기존 약제로 치료되지 않고 부작용이 심한 환자에게는 이런 최신 생물학적 제제를 편하게 쓸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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