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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강요는 곧 고통” 비혼 외치는 中 청년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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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파혼을 선언한 20대 중국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SCMP·바이두

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파혼을 선언한 20대 중국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SCMP·바이두

결혼식 직후 돌연 파혼을 선언한 중국 20대 여성의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1월 10일 홍콩 사우스차니아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구이저우(貴州)성 출신의 신부 옌(岩)씨는 “사랑에 빠져서가 아니라 부모님을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라며 결혼식 직후 곧장 파혼을 선언했고 중국 젊은층의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중국 전역에 퍼진 해당 영상에서 옌씨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터트렸다.

사연은 이렇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을 찾기 시작했다. 이웃과 친척들의 성화 역시 견딜 수 없었다. 소개팅을 통해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을 결심했지만 이는 그저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한 결심이었다. 옌씨는 파혼 이후 올린 온라인 게시물에서 “가능한 한 빨리 부모님의 기대와 문화적 규범에 부응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결혼은 나의 미래를 앗아간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옌씨의 사연은 순식간에 1만 1천 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누리꾼들은 “결혼 강요는 고통”이라며 “나 자신보다 남에게 미안하다고 느끼는 편이 낫다. 인생은 짧다”, “결혼을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범죄” 등의 의견을 남겼다.

중국엔 여전히 젊은층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또 강요하는 행위가 문화적 규범으로 남아있다. ‘결혼은 필수’이며 ‘결혼에 관한 문제에서 자녀는 부모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전통적인 중국인의 믿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중국 상하이에선 부모가 직접 거리에 나가 자녀의 결혼 상대를 찾기도 한다. 우산 위에 자녀의 학력이나 월급 등 신상정보가 담긴 팻말을 부착하고 짝을 찾는다. 대리 ‘공개구혼’인 셈이다.

자녀의 이름, 학력, 나이, 월급 등 신상 정보가 담긴 종이를 우산 위에 걸쳐 놓고 기다리는 중국 부모들. 중국 상하이의 한 공원에서 이뤄지는 ‘우산 맞선’이다. 셔터스톡

자녀의 이름, 학력, 나이, 월급 등 신상 정보가 담긴 종이를 우산 위에 걸쳐 놓고 기다리는 중국 부모들. 중국 상하이의 한 공원에서 이뤄지는 ‘우산 맞선’이다. 셔터스톡

그러나 지금의 중국 청년은 다르다. 대부분의 청년은 더는 결혼이 삶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들에게 결혼의 개념은 기성세대와 확연히 다른, 정신적·물질적 삶의 질을 증진하는 방법의 하나다.

남성으로부터의 독립은 현대 여성의 상징이 되었고,
정서적 기반과 직업적 안정은 결혼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

중국가족계획협회를 포함한 여러 단체가 지난달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대부분의 대학생은 더 이상 결혼이 삶에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통계연감 2022〉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초혼 수는 1160만 명으로 전년도보다 약 70만 명 감소했다. 2013년 239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데 비해 크게 준 수치다.

비(非)혼에 따른 출생률도 줄었다. 지난해는 중국의 인구가 6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해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며 전체 인구는 전년 대비 85만 명 감소한 14억 1180만 명을 기록했다. 출산 가능 인구, 모(母)의 수는 지난해 956만 명으로 2021년 1062만 명에서 9.98% 감소했다. 보고서는 ‘가정을 꾸리기 전에 경력을 쌓는 것’은 남녀 모두의 원칙이 되었고, ‘출산 중 고통’은 여성들이 출산에 대해 갖는 주된 두려움이라고 밝혔다. ‘비혼 동거’에 대한 높은 수용도와 ‘사생아 私生兒’에 대한 낮은 수용도 역시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인구 절벽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은 부부가 3명까지 낳을 수 있는 이른바 ‘세 자녀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중국의 출산 장려 정책은 젊은이의 결혼이나 출산 욕구를 증폭시키지 않는다. 보고서는 국가적으로 시행된 출산 장려 정책이 실질적으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젊은이의 욕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전체 학생의 8%만이 세 자녀 정책(2021년 5월 도입)이 아기를 갖고자 하는 의지를 높였다고 답한 반면, 40% 이상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 9월 중국 당국은 혼인율과 출산율 감소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적인 혼인 및 출산 조사를 했다. 남자 대학생의 경우 가장 큰 고민은 ‘결혼비용’이었고, 여자 대학생은 ‘커리어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걱정했다.

보고서는 “남성으로부터의 독립은 현대 여성의 상징이 되었고, 정서적 기반과 직업적 안정은 결혼의 전제조건이 됐다”고 밝혔다. 여성, 특히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은 취업 시장에서 차별에 더 취약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육아 책임으로 인해 경력 초기 단계에서 종종 뒤로 물러나 서 있다. 보고서는 정책 입안자들이 여성의 요구와 관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직업’과 ‘가정’ 사이의 간극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출산 장려 정책 대신, 취업 지원책을 더 희망하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의 도시 실직률은 12월 5.5 %로, 11월 5.7%보다 낮아졌지만 16~24세 실업률은 12월 16.7%로 높아지며 전달 대비 17.1%보다 낮아졌다.

독신 생활을 선택하는 것은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일이었지만 비혼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 오명이 사라지는 추세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젠더 문제 연구원인 천야야(Chen Yaya)는 2011년 중국 언론이 27세 이상의 미혼 여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성차별적 표현인 ‘성뉘(剩女)’가 논란이 된 이후 사회적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천씨는 “당시에는 미혼 여성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보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었지만, 지금 사회는 여성의 독신 생활을 정상적인 생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 중국 여성들은 본인의 ‘비혼’ 생활을 보여주는데 거리낌 없다. 중국의 유명 SNS 샤오훙슈에 ‘older single women’을 검색하면 다양한 나잇대의 독신 여성들의 계정이 나타난다. 모두 자신이 독심임을 강조하며 현재의 삶에 대한 충만함과 사회적 프로필을 보여준다. 나이가 든 미혼이지만 여전히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랭커스터 대학의 류츠링(Liu Chih-ling)은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으며, 성공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2021년 10월 중국공청단(中國共青團)이 실시한 〈중국 도시 청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결혼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유명 비혼 인플루언서 미니(mini)는 “‘남자를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싱글일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뿐이다"라고 밝혔다.

중국의 유명 비혼 인플루언서 미니(mini)는 중국의 인스타그램인 샤오훙슈 등에서 그녀의 화려한 독립 생활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자주 공유한다. businessinsider

중국의 유명 비혼 인플루언서 미니(mini)는 중국의 인스타그램인 샤오훙슈 등에서 그녀의 화려한 독립 생활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자주 공유한다. businessinsider

결혼을 기피하는 주된 이유는 일자리와 소득 등 사회경제적 자원의 결핍뿐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이는 중국의 일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청년층의 비혼과 출산 기피 역시 사회적 ‘문제’로 여겨진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고심하고 있지만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안들에 대한 명확한 원인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비혼과 출산 기피를 막을 해답은 없다.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비혼과 출산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보는 것이 아닐까.

김은수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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