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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못하겠다 하면 공개총살"…탈주 러 용병이 폭로한 '악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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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그너그룹에서 탈주한 전직 용병 안드레이 메드메데프. 로이터=연합뉴스

와그너그룹에서 탈주한 전직 용병 안드레이 메드메데프. 로이터=연합뉴스

"숫자를 셀 수가 없다. 더 많은 시신이 쌓이면, 내 밑에 더 많은 죄수가 충원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러시아 용병기업 와그너그룹에서 탈주해 노르웨이로 달아난 전직 용병 안드레이 메드베데프(26)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이 거느렸던 병사의 수를 묻는 말에 이처럼 답했다.

메드베데프는 군 복무 경력이 있었던 까닭에 작년 6월 용병계약을 맺은 직후 최격전지 중 하나인 바흐무트에 투입돼 현장 지휘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처음 자신 아래에 배치된 인원은 10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죄수들을 전쟁에 동원하면서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와그너그룹 대표가 러시아 각지 교정시설에서 죄수들을 용병으로 영입, 전선에 대거 투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드베데프에 따르면 이렇게 충원된 병력 중 상당수는 제대로 된 작전 지시조차 받지 못한 채 전장에 내몰려 희생됐다.

그는 "실질적으로 전술 따위는 없었다. 우리에게 내려진 명령에는 그저 적의 위치 정도만 나와 있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지시가 없었다"고 말했다. 메드베데프는 자신을 포함한 와그너그룹 용병들을 '총알받이'라고 부르며 자조했다.

지난 2010년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그의 측근 예브게니 프리고진 와그너그룹 대표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서 학용품을 생산하는 공장 주변을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010년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그의 측근 예브게니 프리고진 와그너그룹 대표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서 학용품을 생산하는 공장 주변을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인데도 와그너그룹 상층부는 사기가 떨어진 용병들을 공포로 다스렸다고 한다.

메드베데프는 "그들은 싸우길 원치 않는 이들을 둘러싸고 신병들의 눈앞에서 총살했다. 전투를 거부한 죄수 두 명을 모두의 앞에서 사살하고 훈련병들이 파낸 참호 안에 매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와그너그룹을 창립한 프리고진 대표와 러시아군 특수부대 장교 출신인 드미트리 우트킨에게 직접 보고할 때도 있었다면서 이 두 사람을 "악마"로 지칭했다.

또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사한 죄수 출신 용병의 유족에게 1인당 500만 루블(약 8천7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그런 종류의 돈을 지불하길 원치 않았다. (전사자) 다수는 그저 실종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해 말 부대에서 탈주한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내에 잠적해 있다가 최근 국경을 넘는 데 성공, 노르웨이에 망명을 신청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10차례 이상 체포될 뻔했고, 마지막에는 흰옷으로 위장한 채 얼어붙은 강을 건너야 했다고 말했다.

메드베데프는 자신의 진술이 프리고진과 푸틴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데 도움이 되길 원한다면서 "늦든 이르든 러시아에선 선전전이 먹히지 않게 될 것이고, 민중이 봉기하면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프리고진은 CNN에 보낸 이메일 성명에서 "현재까지 와그너그룹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례는 단 한 건도 기록된 바 없다"고 메드베데프의 주장을 반박했다.

와그너그룹이 소속 용병을 총알받이 취급하고 즉결처형을 일삼았다는 메드베데프의 발언과 관련해선 "군사상 사안"이라며 언급을 거부하면서 "와그너그룹은 현대전의 모든 규범을 준수하는 모범적 군사조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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