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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앙금 씻은 佛ㆍ호주, 우크라 지원 '포탄' 함께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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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계약 파기로 한때 파국 직전으로 내몰렸던 프랑스와 호주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포탄 수천 발을 양국이 협력해 생산하기로 하는 등 관계 정상화 기조가 확연해졌다.

잠수함 계약 파기로 얼어붙었던 프랑스와 호주 간 관계가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사진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지난해 11월 16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잠수함 계약 파기로 얼어붙었던 프랑스와 호주 간 관계가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사진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지난해 11월 16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양국 간 외교ㆍ국방장관(2+2) 회담에서 양국은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할 155㎜ 곡사포 포탄을 공동 생산하는 데 합의했다. 호주가 화약을 보내면 프랑스 방위산업체가 포탄을 만들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로이터 통신 등은 이날 전했다.

개전 초기 고전하던 우크라이나군은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155㎜ 곡사포를 지원받은 이후 전세를 급반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만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을 꾸준히 제공해왔다.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 미국이 한국에서 155㎜ 포탄 10만발을 구매한 뒤 미군 재고탄을 우크라이나에 대신 보내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미국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155mm M777 곡사포를 지리정보 등과 연동해 러시아군 진지를 효율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24일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 지역에서 155mm 곡사포를 발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은 미국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155mm M777 곡사포를 지리정보 등과 연동해 러시아군 진지를 효율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24일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 지역에서 155mm 곡사포를 발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올 1분기 이내에 포탄이 우크라이나군에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수천 발의 포탄이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리처드 말스 호주 국방장관은 “양국이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함께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다”며 “양국의 방위산업이 상호보완적이어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새 호주 정권 "잠수함 위약금 물겠다"

이런 모습은 지난해 전반기까지 상황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스콧 모리슨 전 총리(당시 자유당 대표) 시절인 지난 2021년 9월 호주는 프랑스와 맺은 560억 유로(약 74조 7000억원) 규모의 디젤 잠수함 12척 도입 계약을 돌연 파기했다.

보수연합인 모리슨 전 정권이 같은 해 9월 15일 미국ㆍ영국과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 동맹을 결성하면서 미ㆍ영으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지원받기로 한 데 따른 결정이었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모리슨 총리를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맹비난하는 등 이후 양국 관계는 파국 직전으로 치달았다.

호주는 프랑스와 디젤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지원받기로 하면서 2021년 9월 돌연 계약을 취소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5월 호주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맬컴 턴불 당시 호주 총리와 함께 호주 해군의 콜린스급 잠수함에 승선한 모습. AFP-연합뉴스

호주는 프랑스와 디젤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지원받기로 하면서 2021년 9월 돌연 계약을 취소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5월 호주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맬컴 턴불 당시 호주 총리와 함께 호주 해군의 콜린스급 잠수함에 승선한 모습. AFP-연합뉴스

그러다 지난해 5월 호주 정권 교체 이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노동당 대표)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프랑스를 방문해 잠수함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 5억5500만 유로(약 7400억원)를 물겠다고 밝혔다.

새 호주 정부의 유화적인 태도에 마크롱 대통령도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잠수함 구매 계약이)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다”는 말까지 했다.

호주 측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일각에선 이번 우크라이나 포탄 공동생산을 통한 군수협력 시동이 심상치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과 관계 정상화에 미국은 불안

친미 일변도였던 모리슨 전 정권과 달리 집권 노동당의 외교 지향점이 ‘등거리 외교’에 가깝다는 게 여러 전문가의 분석이다. ‘친중파’로 불리던 케빈 러드 전 총리 시절 부총리를 지낸 앨버니지 총리는 특히 중국과 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다.

중국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주장하던 모리슨 전 정권 시절에 호주산 자원과 농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달 초 호주산 석탄 금수 조치를 해제하는 등 최근 유화적으로 돌아섰다.

호주 노동당 정권은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에 중국도 각종 금수 조치를 해제하고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사진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지역의 울란 광산에 쌓여 있는 석탄. 로이터-연합뉴스

호주 노동당 정권은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에 중국도 각종 금수 조치를 해제하고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사진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지역의 울란 광산에 쌓여 있는 석탄.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당국이 호주 관광을 허용하면서 중국발 호주행 항공기 편수도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달 21일엔 중국을 방문한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이 왕이 당시 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대화를 시작하거나 재개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까지 발표해 앞으로 양국 간 경제협력이 빠르게 정상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같은 호주의 변화에 미국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호주가 미국 중심의 대중국 견제 기구인 쿼드(Quad)와 오커스의 핵심축인 만큼 호주ㆍ중국 간 관계 정상화가 단일대오를 흩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미 백악관이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앨버니지 총리 간 정상회담 이후 밝힌 성명에서 “양국 정상이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강조한 것도 호주 정부에 대한 견제구 성격이란 풀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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