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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성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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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1987년 2월 18일. 서울 합정동 여성의전화 강당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발족 총회가 열렸다. KBS 시청료 거부운동 단체와 부천서 여대생 성고문 사건에 분노했던 21개 여성단체가 동참했다. 이후 20년간 한국의 진보적 여성운동의 대명사가 될 여연의 창립 행사치곤 매우 소박했지만 함께했던 인물의 면면은 화려했다. 초대 회장을 맡은 이우정씨를 비롯해 박영숙.한명숙.이미경.김희선.지은희.이경숙씨 등 소위 진보적 여성 인사들이 총망라됐다.('열린희망:한국여성단체연합 10년사' 참조)

여연의 등장은 신선했다. 한국여성운동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독립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휘둘린 과거가 있다. 어용성과 관변화는 한국 여성운동이 청산해야 할 과제였다. 여연은 비판적 시민단체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선언했다. 이 점에서 이전 여성단체와는 차별화됐다.

이들은 성폭력.가정폭력 특별법 제정과 호주제 폐지, 직장 내 성희롱 금지, 동성동본 금혼제 위헌 판결, 고용 및 정치 분야에서의 여성 할당제 도입 등을 이끌어냈다. 그들의 행보는 하나하나가 한국 여성운동의 새 역사를 써 나가는 일이었다. 여연의 활동가들은 재원 마련을 위해 밤 새워 딸기잼을 만들어 팔고 후원티켓을 파느라 전화통과 씨름하기도 했다.

그 여연이 어느덧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최근 비전 마련과 새로운 운동방식을 모색해 보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하지만 이날 토론에서 칭찬은 잠깐이었고, 대신 따끔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중 '여연의 권력화'에 대한 비판은 가장 아픈 지적이었다. 한 남성 토론자는 "여성단체 대표 자리가 장관.국회의원이 되는 지름길이 되고 (여성단체에 가서) '말 잘못하면 찍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억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여연은 이제 권력화됐다"고 지적했다.

사실 여성운동가들이 처음부터 '자리'를 탐냈던 것은 아니다. 여연의 한 대표는 법 제정과 제도화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느라 권력화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초대 대표부터 직전 대표까지 장관.국회의원.총리로 변신한 것을 두고 여성운동이 고위직을 예비하는 자리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오히려 후배 운동가와 여성운동에 부담이 될 정도다. 여성운동의 순수성에 대한 시비는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억압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도 문제다. 여성운동에 힘을 보탰던 한 남자 교수조차 "여성단체에 가선 말조심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미묘한 쟁점에 대해 말을 잘못했다가는 대화나 토론 이전에 '마초'나 '골통' 등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고 본전도 건지기 어렵다고 했다. 성매매.성폭력 등의 문제에 여성운동가들이 완고한 태도를 보이는 심정이 이해는 되지만 온 국민이 관련된 사안을 놓고 벌어지는 대화와 토론의 장에서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선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국회에 로비해 법을 제정하고 정부에 압력을 넣어 정책을 시행하면 일견 여성운동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다른 문제다. 여성운동이 오만해졌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요즘 여성운동이 위기라는 진단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럴수록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이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이효재(전 이화여대 교수) 선생이 더욱 그립다. 수많은 제자와 운동가를 길러냈고 여연의 대표를 지냈지만 그는 그 흔한 위원회 자리도 사양했다. 선생은 정년퇴임 후 진해로 내려가 현재 여든둘의 고령에도 어린이 도서관 짓기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사회운동이란 희생과 인내를 양식으로 살 수밖에 없고 그래야 빛이 난다고 강조하곤 했다. 위기라고 진단받은 여성운동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문경란 논설위원 겸 여성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