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 신부 없는 성당이 늘고 있다|고독·격무이유 성직 포기 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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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부 없는 성당 있을 법하지 않은 이 일은 많은 천주교인들이 우려하는 멀지 않은 미래 미국성당들의 모습이다.
미시간주 탄광촌인 팔머마을 성당에선 세 자녀를 둔 바버라플래너리여사가 신부가 미리 축복한 성수와 포도주로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고 성체를 하며 주말설교를 하고 있다.
신자는 매년 늘어나는데 이들의 영혼을 인도할 사제는 오히려 크게 줄어 일반신도들이 신부역을 대리하는 성당이 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카톨릭 인구는 60년 4천2백10만명에서 88년 현재5천3백50만명으로 늘었고 최근 몇 년 사이엔 연 증가수가 1백만명을 넘는다.
미국사회가 점차 각종 범죄·마약·에이즈 등 문명 말기적 증상을 보이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개신교보다 교리가 더 엄격한 카톨릭교회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사제수는 60년 5만여명에서 88년 현재 3만4천7백91명으로 줄었다.
미국최대인 시카고교구는 최근 18일마다 신부 한사람씩 줄고 있고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선 올 들어 25명의 사제가 성직을 떠난 반면 한명 만이 보충되었다.
사제부족으로 많은 대성당들이 신부를 줄여 운영하고 있고 한 신부가 여러 성당을 맡아 순회미사를 보는가하면 일부에선 수녀나 일반신자들이 미사를 대신 집전하고 있다.
카톨릭 성직자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은 우선 사제희망 젊은이가 적기 때문이다.
60년대 고등학교나 신학대학에서 사제교육을 받은 학생수는 4만명에 달했으나 현재는89%가 줄어든 4천5백명에 불과하다.
돈·명예·섹스 등 역동적 삶에 더 가치를 부여하게된 젊은이들이 사제직을 따분한 것으로 판단, 이에 종사하길 꺼리고 있다는 것이 볼티모어의 한 가톨릭고교 빌 메니온 신부의 설명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 예상외로 많은 사제들이 성직을 버리고 환속하는 현상이다.
정확한 환속 성직자수는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성직을 떠난 사제들은 그 이유로 고독과 격무를 들고있다.
뉴욕 한 교회에서 25년을 봉직한 리처드 스나이더 신부는 고독을 못 이겨 87년 사제직을 그만두고 결혼했다.
고독이란 카톨릭성직자가 서품을 받으며 각오한 내면의 인고지만 최근 성직자 부족으로 인해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 몬대나주 토니 슈스터 신부의 고백이다.
예전 신부들이 부족하지 않을 땐 신부들끼리 모여 카드놀이를 하거나 대화를 나눔으로써. 외로움이 잊혀질 수 있었으나 사제부족으로 업무량이 늘고 심한 경우 하루 수백 마일을 달리며 순회미사를 보아야하기 때문에 서로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여러 이유들이 미국의 2만3천5백52개의 카톨릭성당을 점차 신부 없는 성당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위스콘신 주립대 리처드 쇤허 교수(사회학)가 올해 초 미주교단에 낸 보고서는 현 상황이 계속될 경우 2005년엔 카톨릭교인은 7천5백만명으로 느는 반면 사제수는 현재의 절반인 1만7천명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신부 없는 성당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제부족의 가장 큰 요인인 사제의 독신지정 철폐와 여성사제허용을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다.
특히 카톨릭사제 희망자가 급감한 반면 개신교 목사 희망자는 꾸준히 늘고있음을 지적, 이것은 미국에 성직희망자가 적은 것이 아니라 카톨릭의 독신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사제 허용론자들은 남성사제제도는 남녀불평등의 구시대유물로 청산되어야 하며 수녀나 일반여신도들이 사제를 대신하는 성당이 늘어나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미 카톨릭교회는 70백50년간 내러온 전통적 규율을 지키며 사제 없는 교회로 존재할 것이냐, 아니면 세계카톨릭계에 대 변혁을 몰고 올 사제충원을 위한 대 개혁을 할 것이냐를 최소한 2000년대 초에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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