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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덮친 플라스틱 방음터널…5명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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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9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성남 방향으로 향하던 폐기물 수거용 집게 트럭 엔진룸 근처에서 난 불이 터널 구조물로 옮겨붙으며 화염이 치솟았다. 이 사고로 5명이 사망했고 37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성남 방향으로 향하던 폐기물 수거용 집게 트럭 엔진룸 근처에서 난 불이 터널 구조물로 옮겨붙으며 화염이 치솟았다. 이 사고로 5명이 사망했고 37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29일 오후 1시49분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이 시작된 건 안양에서 성남 방향으로 향하던 폐기물 수거용 집게트럭 엔진룸 근처였다. 트럭을 몰던 A씨(63)는 경찰에 “차량 엔진 쪽에서 연기가 나서 차를 갓길에 세웠는데 불이 났다”고 진술했다. 이후 불이 플라스틱 재질로 된 방음터널에 옮겨붙으며 순식간에 대형 화재로 번졌다. 사고가 난 방음터널은 환기창 등이 없이 입·출구를 제외하면 밀폐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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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5명은 최초 화재가 발생한 트럭이 아닌 주변을 지나던 차량 4대(승용차 3대, SUV 1대)에서 발견됐다. 모두 트럭과는 반대 방향(성남→안양)으로 달리던 차량들이었다. 소방당국은 사망자들이 모두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상자 37명 가운데 3명은 안면부 화상 등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고, 21명은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귀가했다.

터널 속 쏟아진 불똥비…“차 버리고 뛰어나와 겨우 탈출” 

화재 구간 내에 고립된 차량은 총 45대였다. 차량들은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도로 위는 녹아내린 타이어와 유리 파편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12월 29일 오후 1시49분쯤 제2경인 왕복 8차로 도로 방음 터널 내에서 화물차 엔진룸 화재 발생. [연합뉴스]

12월 29일 오후 1시49분쯤 제2경인 왕복 8차로 도로 방음 터널 내에서 화물차 엔진룸 화재 발생. [연합뉴스]

소방당국과 화재 목격자들에 따르면 불이 플라스틱 소재의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붙은 뒤 현장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화재 당시 차량을 몰고 터널을 지나던 이현석(53)씨는 “화재 차량에서 빨간 게 깜빡여 보고 있는데, 갑자기 뻥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터널 전체가 까맣게 변했다”며 “주변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였다. 보이지도 않는데 창문 쪽으로 기어서 걸어 나왔다”고 말했다.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

화재가 발생한 방음터널은 2017년 9월 제2경인연결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만들어졌다. 총길이 약 830m 중 이번 화재로 600m가 소실됐다. 화재 당시 영상을 보면 수백m에 달하는 구간이 시뻘건 불길에 휩싸이고 터널 양옆으로는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방음터널 천장이 열기에 녹아 불똥이 비처럼 떨어졌다. 차량 견인을 위해 현장에 진입하려 했던 견인업자 서모(35)씨는 “도착했을 때 터널 입구까지 불길이 솟구쳐 소방차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며 “안에서는 차들이 미사일이 터지는 것처럼 ‘펑’ 소리를 내면서 터졌고, 대부분이 몸만 빠져나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견인업자 30대 남성 김모씨는 “완전히 배우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 ‘터널’ 그거였다”며 “사람들이 뛰면서 대피하느라 넘어지고 난리였다”고 말했다.

불이 방음터널로 옮겨 붙으며 수백m까지 번져 전체길이 약 830m 터널에 차량 45대 고립. [연합뉴스]

불이 방음터널로 옮겨 붙으며 수백m까지 번져 전체길이 약 830m 터널에 차량 45대 고립. [연합뉴스]

현장 혼란이 극심했던 탓인지 당국의 사고 관련 발표가 정정되는 일도 있었다. 사망자 수가 최초에는 6명으로 발표됐지만 추후 중복집계된 사실이 확인돼 5명으로 재공지됐다.

방음벽에 붙은 불로 다량의 연기·유독 가스 발생, 지붕은 불길에 녹아 흘러내림. [연합뉴스]

방음벽에 붙은 불로 다량의 연기·유독 가스 발생, 지붕은 불길에 녹아 흘러내림. [연합뉴스]

화재 발생 20여 분 뒤인 오후 2시11분쯤 대응 1단계를 발령한 소방당국은 10여 분 만인 오후 2시22분쯤 경보령을 대응 2단계로 올렸다. 이어 펌프차 등 장비 94대와 소방관 219명, 소방헬기를 동원해 오후 3시18분에 큰 불길을 잡았다. 대응 1단계는 인접 3~7개 소방서에서 31~50대의 장비를, 대응 2단계는 8~14개 소방서에서 51∼80대의 장비를 동원하는 경보령이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2시간여가 지난 오후 4시12분쯤 불을 완전히 진화하고 대응 단계를 해제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50여 명 규모로 수사본부를 구성한 뒤 집게차 운전자 A씨 등을 상대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30일 오전 10시30분 현장 합동감식 등을 통해 정확한 피해 규모와 화재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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