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삼성전자 '儀典 삼총사' 방진선·이수향·김민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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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좁게는 국가적인 행사에서 고위급 인사의 영접시 행해야 하는 국제적인 예의. 하지만 넓게는 개개인이 지켜야할 건전한 예의범절을 의미한다.'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 있는 '의전'의 정의다. 보통은 '높은 분들을 공식적으로 맞는 법'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실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예의'라는 얘기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삼성전자의 '의전 삼총사' 방진선(30.대리.1995년 입사).이수향(24.2000년 입사).김민정(25.2002년 입사)씨를 만나보면 이런 의전의 뜻을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해 40조원어치의 물건을 팔고 7조원이 넘는 순이익(2002년 기준)을 남긴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 이런 삼성전자의 의전을 맡고 있는 이들을 지난달 28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 디지털 단지에서 만났다.

# 우리는 '의전 삼총사'

기업의 의전은 아직은 국내에 생소한 분야다. 교역량에서 세계 10위권을 오르내리지만 해외 귀빈들을 위해 '상설 의전팀'을 꾸리고 있는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포스코.현대자동차 등 손에 꼽힌다. 이중 요즘 들어 삼성전자를 찾아 의전의 처음과 끝을 배우려는 기업들도 늘고 있어 방대리와 이수향.김민정씨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10명의 국빈이 우리나라를 찾으면 7~8명은 저희 회사를 방문하세요. 국가대표 선수가 된 기분이 들어요.(웃음)"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압둘 아지즈 샤 말레이시아 전 국왕…. 그간 이들이 맞았던 '굵직한 손님'들만 해도 두 손으로 꼽기에 벅차다. 지난달엔 베트남의 판 반 카이 총리도 찾았다.

이런 귀빈들이 오는 경우, 삼총사는 보통 한달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접견이나 브리핑에 대한 리허설은 기본이고 귀빈이 좋아하는 음료수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파악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두지 않으면 힘들다.

"깍듯하게만 모시면 되지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요? 모르는 말씀입니다. 저희는 어떤 질문을 받을지 모르니 사내 동향은 물론 관련 업계 동향까지 꿰뚫고 있어야 해요. 물론 연일 쏟아지는 우리 회사 신제품에 대한 각종 정보도 환하게 알아야 해요. 게다가 국제적인 매너도 몸에 익혀야 하고요."

# 힘든 만큼 보람찬 일, 의전

"매끈하게 일을 치러내고 나면 정말 기뻐요. 힘들긴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있죠."

산더미 같은 일거리를 늘어놓기에 "일이 싫겠다"고 하자 삼총사는 의외로 "일 생각만 하면 아픈 몸도 나을 정도로 일이 좋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저희 회사는 물론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이잖아요"라는 '모범답안'부터 "언제 우리가 그렇게 '높은 분'들을 또 만나보겠어요"라는 애교섞인 답까지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일에 빠져 살다 보니 삼총사는 가끔 직업병 증세도 보인단다.

"의전에서 계단을 오를 땐 주빈을 배려하기 위해 몸을 45도 뒤로 돌린 채 올라야 하거든요. 그런데 버릇이 됐어요. 평소에도 계단을 그런 식으로 오르니 시간이 더 걸려요. 또 누가 길을 물으면 안내하듯 손을 펼치게 되죠. 처음보는 사람들이 '백화점에 근무하세요'하고 물어볼 정도죠."

장래 희망도 모두 의전분야에서 찾는다. 방대리는 사내에서 의전 분야 최고 전문가가 돼 후배들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李씨는 훗날 기업들의 의전을 대행하는 의전대행사를 차리고 싶은 것이 꿈이다. 金씨는 '의전백과사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 취업문, 성실로 뚫어라

삼총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특채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해외 학위 같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방대리는 경기대 일문과를, 李씨와 金씨는 경희대 영어교육학과와 인하대 중국어과를 나왔다. 李씨를 제외하곤 1년 이상 외국에 체류한 경험도 없다.

이런 그들이 취업준비생들이 선망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성실함이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총사는 모두 전공 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다. '청년실업자'가 40만명에 육박하는 요즘 같은 때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방대리는 대학 4년을 모두 일본의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다녔다고 했다. 우수한 성적을 인정받아 대학과 교류를 맺고 있던 현으로부터 등록금을 받은 것.

李씨는 대학 시절 학교 의전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측이 국제행사를 위해 만든 의전팀에 자원, 여러 국제행사를 치르며 외국어 실력은 물론 국제적인 감각도 기를 수 있었다고 했다. 金씨도 대학 생활 절반 이상을 장학금으로 다녔고 중국어 습득을 위해 8개월간 중국에서 연수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기 위해선 평소에 꾸준히 준비해야 합니다"라는 게 이들이 털어놓은 다소 평범한 '취업 비법'이었다.

수원=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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