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준예산 현실화하면 보육·일자리 등 민생 사업비 280조 막혀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16호 06면

새해 예산안이 법정 처리 시한 전에 통과된 예는 거의 없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2년 동안 국회는 법정 시한을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여야는 2014년 5월 국회선진화법을 만들면서 예산안 자동 부의 제도를 도입했다. 예산안과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에 대해 11월 30일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가 낸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되도록 한 것이다.

이 덕에 2015년도 예산안은 법정 시한(2014년 12월 2일)에 맞춰 통과됐다. 그러나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2016년도)에는 또다시 법정 시한을 하루 넘겼고 2018년도 예산안은 법정 시한을 4일, 2019년도는 6일, 2020년도는 8일 넘겨 통과됐다. 2021년도 예산은 6년 만에 법정 시한을 준수했지만 지난해에는 또 다시 법정 시한을 넘겼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정해둔 건 국회 심사를 촉진하고, 중앙정부의 예산 집행 준비 시간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법정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당장 새해 예산 집행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회계 연도 개시일(1월1일) 전에만 국회에서 처리하면 된다. 다만 국회 통과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예산 집행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통상 30일이 소요되는 중앙정부의 예산 집행 준비가 부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 연초 정상적인 업무처리가 불가능해질 수 있고, 지자체는 확정된 중앙정부 예산을 기초로 예산편성을 하지 못하고 임시로 편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실제 집행 과정에서 계획이 변경되면서 갖가지 부작용과 비효율을 불러오고 막대한 행정적,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관련기사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회계 연도 개시일까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정부는 전년도 예산에 준해 잠정적으로 예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는데,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하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던 각종 사업 관련 예산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또 법률상 의무지출과 기관 운영비 등 최소한의 비용 외 보육료와 일자리 지원 등 민생사업 지출도 모두 막히게 된다. 정부안 기준 총지출 639조원 중 약 280조원이 막히는 것이다. 준예산 편성 때에는 대외 신인도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이뿐 아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경색 해소나 기업 자금시장의 신용보강을 위한 정부의 긴급 자금 지원도 막혀 한국경제를 더 심각한 위기로 내몰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경제가 위기인 상황에서 꼭 필요한 정부 지출이 적지 않은데, 이런 것들이 준예산에 발목이 잡히면 (한국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금융감독 체제 등을 두고 정치적 갈등이 벌어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어려움이 가중된 바 있다. 성 교수는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살얼음판을 걷는 한국경제를 구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며 “경기 침체가 단기간에 끝나긴 어려운 상황인데 한국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예산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산안 법정 시한을 넘긴 여야는 주말동안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논의 등을 통해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쟁점 해소에 나설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예산안 처리 가능성을 점친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2일 “글로벌 복합경제위기 속에서 물가와 금리가 치솟고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수출마저 부진한 상황에 내년도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야말로 국회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며 “정기국회 내 예산안이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