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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린 싱글맘 싱글대디 ④ 우리 아이 학교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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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이가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아왔다. 어느 항목에도 부모가 함께 사는지 기록하는 곳은 없어 그냥 아빠.엄마의 신상명세를 다 써서 보냈다. 며칠 지나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아버님께 운영위원직을 맡기려는데 어떠세요?" "아, 네… 그런데 아빠가 같이 살지 않아요."

전화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럼, 어머님이 하시죠."

그렇게 덜컥 운영위원이란 자리를 맡아버렸다. 더불어 우리가 모자가정임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게 돼 버린 것이다. 아이도 유치원 때부터 아빠와 함께 살지 않음을 당당하게(?) 드러내 버릇해서 그다지 갈등 없이 지내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어느 날 아들이 알림장을 내밀었다.

"내일 역할놀이 할 거야. 아빠 할 사람은 넥타이, 엄마는 앞치마 준비해 오래."

"그럼 넥타이 준비하지 뭐." "내가 아빠 역할을 어떻게 해?" "그럼, 앞치마 가져가든지."

아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결국 아무 준비물도 챙기지 않고 학교에 가버린 아들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다. 저녁에 선생님께 전화로 여쭤보니 "자기는 아빠랑 같이 안 살아서 아빠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그냥 한 시간 내내 아기 역할 했어요" 하신다.

그렇게 아빠의 부재가 아이를 곤란하게 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꿋꿋했다.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숨겨야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올 들어 3학년이 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버린 듯하다. 이유인즉, 자기 친구들 중 누구도 엄마 없이, 아빠 없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친구는 없다는 것이다. 그건 비밀처럼 다뤄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버린 듯하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가정은 언제나 사이좋은 부모와 착한 자녀로 구성돼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꿈꾸는 가정의 모습이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은 보호받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모습을 꿈꾼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오늘 너 참 기쁜 표정이구나"라고 물으면 "네, 오늘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이에요" 혹은 "어제 아빠를 만났어요"라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말하고 모두 함께 기뻐해 주는 그런 날을.

숨기기보다 드러내서 함께 도와주는 세상을 꿈꾸는 건 너무 이상적인 것일까. 같이 살지 않아도 엄마.아빠는 어디에서든 너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고 아이들이 알고 자라나게 싱글 부모들이 먼저 노력해야겠지만 말이다.

박소원


"아빠, 이제 알았어. 친구들이 왜 나랑 안 놀아주는지. 엄마가 없어서 그런가봐."

어린이집에 갔다온 딸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니야. 신우가 새로 온 친구라서 그런 거야"하며 딸아이 얼굴을 들어올리자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우리 둘이 살게 되고 나서 몇 개월 동안 딸아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을 못 했다. 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엄마가 없어서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 것 같다며 울먹였을 때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한없는 죄책감도 들었다.

아이의 치유력이 강한 것일까. 아빠와의 일과에 빨리 적응했다. 아침이면 어린이집 안에서 신발을 벗고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모은 채 내게 인사를 했고, 오후면 "신우야, 아빠 오셨네"하는 선생님 말씀에 긴 머리를 팔랑이며 뛰어나왔다. 나도 아이가 느낄 빈자리가 미안해 더욱 신경을 써주려 노력했다. 부모 모임에도 직접 참석했고, 저녁이면 부녀가 손을 잡고 동네를 돌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학부모총회.운동회.공개수업 등에 빠지지 않았고, 아이는 그런 아빠를 자랑스럽게 친구와 선생님께 소개해주었다.

아이도 스스로를 당당하게 생각한다고 믿어왔는데, 2학년이 되고 얼마 뒤 딸아이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학교에서 내준 개인 신상 조사 서류에 나는 늘 그래왔듯이 아빠에 관한 것만 채워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엄마 항목도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지였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맺는데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신우가 아주 옛날 사진을 학교에 가져왔다"고 하셨다. 딸아이는 내게 아무 말도 않고 네 살 때 엄마.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선생님께 제출한 것이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사진에 대해 묻자 '행복한 가족 사진'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랬노라고 했다.

어느 자리에서 지인과 대화하던 중 이 이야기를 하자 자신이 몇 해 전 일본에 머물렀을 때 겪은 일을 얘기해 주었다.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상대가 "넌 누구랑 사느냐? "를 묻더라는 것이다. 말을 잘못 들었나 해서 되묻자 "엄마랑 사느냐, 아빠랑 사느냐? "고 다시 묻더란다. 일본만 해도 가족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만큼 깨진 것이다.

아직 우리는 그런 질문에 당황하고 어색한 기분이 들 만큼 한 부모 가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거부감이나 편견 없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이해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을 바란다.

정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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