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6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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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3부 남로당의 궤멸/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미 앞잡이로 몰려 탈출 결심/최상린 찾아와 “안전한 일에 보내주겠다” 약속
나의 책임을 추궁하는 회의가 계속 열렸다. 책임자로서 폭격을 당했을 때의 사전대책을 왜 세우지 않았는가,왜 혼자만 피했는가 등 별별추궁이 많았다.
폭격을 당했을 때에는 바로 언덕밑의 방공호로 대피하도록 대책도 세우고 훈련도 했지만 비행기가 올 때마다 방공호에 대피하다가는 하루내내 방공호안에 들어 앉아 있어야 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대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전대책 운운한다면 미군이 개입할 경우의 사전대책도 없이 전쟁을 도발한 김일성이 제일 먼저 책임을 져야했다. 그리고 8월15일이 되어도 휴전은 되지 않는데 휴전이 된다고 맹폭해서 이런 일을 시킨 김일성이 전책임을 져야할 것이었다.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차마 입밖에 낼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불찰로 귀중한 동지들의 생명을 잃게되어 죄송하다고 자기비판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비판은 형식적이며 자기비판으로 접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조선에서 온 내가 미군과 사전연락을 해 혼자만 피하고 폭격을 시켜 귀중한 북로당 간부들을 의식적으로 죽이게 한 것이 아니냐는 어조로 나에게 자기비판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곰곰 생각하니 나를 형사재판에 회부해 중죄인으로 만들어 탄광으로 보내 말살할 저의가 보였다. 나는 속절없이 죽는구나 싶었다.
나는 자기비판 형식을 바꾸어 내가 죽어야하는데 다른 동지들을 구하지 못하고 나만 살아 남은 것은 소부르좌 인텔리근성이 청산되지 않고 당성이 약해 큰 과오를 범한 것임을 인정하고 내가 죽지 못한 것을 경애하는 수령님과 당앞에 사죄한다고 했다.
이렇게 내가 공손히 나가면 이해해 줄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서울에서의 미 제국주의자들과의 관계도 다 자기비판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서야 그들의 본심을 알았다. 나를 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 몰아 말살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 불가항력이었다. 각 기관에서는 매일 수명의 간부들이 폭사하고 있다. 그러면 각 기관장들은 다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닌가』고 반항하면서 2주일을 버텼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나는 불리해 갔다.
나는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화병이 났다. 몸이 아프다고 결근하고 이강국이 부대장으로 있는 인민군 병원을 찾아갔다. 그 병원은 헝가리 의료단이 와서 하는 병원이므로 「웬그리아병원」이라 했다.
만경대 혁명가 유가족학원을 임시 병원으로 쓰고 있었다. 대령의 군복을 입은 이강국이 반가이 맞아주며 나의 요청대로 당장 그 자리에서 입원시켜 주었다.
입원실 침대에 드러누우니 만사를 잊어버리고 살 것만 같았다. 마침 나의 담당 간호원이 나의 친구인 남로당원의 딸이었다.
내가 입원했다는 소문을 듣고 남에서 온 간호원들이 다 인사하러와 나의 방은 일시에 꽃이 핀 것 같이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평양은 지옥이지만 이강국이 병원장으로 있는 웬그리아병원은 극락이었다. 헝가리 의사들은 인도주의적이며 공평했다. 한 1주일 지나니 문화선전성 초급당위원회에서 나를 데리러 왔다.
헝가리 의사는 지금 퇴원시킬 수 없다고 당위원회의 요구를 거절했다. 병원 옥상에는 적십자 마크가 있어 비행기 폭격도 없고 나는 그만 이강국과 이 병원에서 몇해라도 있고 싶었다. 이강국은 밤이 되어도 원장실에서 독일어 서적을 읽으며 타이프라이터를 치고 있었다.
이로부터 2년 후 이강국은 미제의 간첩이라고 체포되었다.
그 이유는 이강국이 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미군이 이 병원을 한번도 폭격하지 않았고 또 이강국이 밤중에 타이프라이터로 비밀정보를 작성해 미군에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미군은 적십자 마크가 달린 북조선의 병원을 한번도 폭격한 일이 없었다.
결국 나는 문화선전성으로 불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살인적인 사문회의가 시작되었다. 최상린이 찾아왔다.
나는 그를 보고 『야! 나는 죽겠다. 어디라도 좀 내뺐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더니 그는 『야! 그만 일본으로 가라. 일본으로 가서 정세를 보고 그곳에 주저앉으면 그까지 김일성이가 잡으러 가겠나』하는 것이었다.
『참말로 갈 수 있나. 사람 두번 죽이지말고 참말을 해다오』하니 그는 『내가 네 죽이겠나. 내가 부장을 꾀어서라도 꼭 보내주마. 부장이란자도 해방전에는 극장에서 뼁끼칠 하고 있던 일자무식군인데 노동자 출신이라고 어깨에 중성을 네개(대령)나 달고 있다. 내 말이면 다 듣는다. 일본의 일류대학을 나온 인텔리가 일자무식꾼 밑에서 종노릇 할라하니 속이 상해 못살겠다. 나도 그만 일본으로 달아나고 싶다』며 나를 반드시 일본으로 탈출시켜 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래도 나는 잘못하면 일본 탈출죄로 몰릴까 싶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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