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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데 없는 책 많고, 주인은 말 많다...제주 애월 '까칠한 책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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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네책방 산책④ 보배책방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보배책방' 내부 모습. 1층과 2층 절반을 헐어 개방된 공간을 만들었다. 보배책방에서 독서모임 같은 행사가 열리면 이 나무 계단이 좌석으로 사용된다.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보배책방' 내부 모습. 1층과 2층 절반을 헐어 개방된 공간을 만들었다. 보배책방에서 독서모임 같은 행사가 열리면 이 나무 계단이 좌석으로 사용된다.

제주올레 15-A코스가 지나는 제주 서쪽 중산간 마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마을회관을 지나니 왼쪽 모퉁이에 2층짜리 벽돌 건물이 나타났다. 제주도 이주민이 많이 산다는 애월에서 책 사랑방으로 이름난 ‘보배책방’이다. 책방 앞에 차를 대자 책방지기가 문을 열고 나왔다. 정보배(51) 대표. 여러 대형 출판사에서 23년간 책을 만들다 제주에서 4년째 책을 팔고 있는 주인공이다.

“2018년 2월 제주에 내려왔고요. 서울 생활에 지치기도 했지만, 딸 아이 교육 문제가 제일 컸어요. 도시 학교는 보내기 싫었거든요. 서점은 2019년 3월 시작했어요. 책방을 하겠다고 제주에 내려온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솔직히 말하면, 외로웠어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23년간 출판사에서 만났던 사람과 제주에서 만나는 사람이 너무 달랐어요. 대학 졸업하자마자 출판계에서만 있었으니까, 그것도 인문·교양 서적만 다뤘으니까 제가 쓰는 단어와 화법이 제주도 정주민은 물론이고 이주민하고도 달랐어요.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매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매개로 책방을 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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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책방' 정보배 대표. 23년간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제주에 내려와 동네 책방을 차렸다.

'보배책방' 정보배 대표. 23년간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제주에 내려와 동네 책방을 차렸다.

‘책을 매개로 한 대화’는 보배책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실제로 정 대표는 책방을 열자마자 독서모임을 꾸렸다. 그 모임이 4년째 한 달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참가자 십수 명이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면 투표로 한 권을 정해 토론하는 형식으로 모임을 진행한다. 여태 한 번도 빼 먹은 적이 없다.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았을 땐 온라인에서라도 진행했다.

정 대표가 기획한 책 관련 모임과 행사는 얼추 10개를 헤아린다. 페미니즘 책을 읽은 모임, 시사 주간지를 읽는 모임, 북 토크, 북 콘서트, 저자와의 만남, 어린이 토론 수업 등등. 물론 출판사 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정 대표에게 행사에서 쓰일 좋은 책을 고르는 건 차라리 쉬운 일이었고, 서울에서 친분 있던 저자들도 정 대표가 연락하면 기꺼이 달려왔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이현 동화작가, 김추령 과학교사, 한미화 출판평론가 등 보배책방의 부름에 응한 저자는 십수 명에 이른다.

'보배책방' 외부 모습. 올 5월 문을 열었다. 2층짜리 건물로 정보배 대표가 공간 설계를 했다.

'보배책방' 외부 모습. 올 5월 문을 열었다. 2층짜리 건물로 정보배 대표가 공간 설계를 했다.

'보배책방' 2층에서 내려다본 1층과 2층 사이 계단. 평소에는 책이 꽂혀 있는 이 나무 계단이 독서모임 같은 행사가 열리면 좌석으로 사용된다.

'보배책방' 2층에서 내려다본 1층과 2층 사이 계단. 평소에는 책이 꽂혀 있는 이 나무 계단이 독서모임 같은 행사가 열리면 좌석으로 사용된다.

보배책방이 이 자리에서 문을 연 건 올 5월이다. 대출을 받아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2층짜리 책방 건물의 공간 배치를 정 대표가 구상했다. 그래서 책방 구조가 독특하다. 1층과 2층이 반쯤 뚫려 있다. 넓은 계단이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데, 평소에는 책이 꽂혀있던 계단이 독서모임 같은 행사가 열리면 좌석으로 사용된다. 행사가 열리면 1층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오고, 2층 한편에는 8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도 있다. 정 대표는 “처음에는 이주민 중심으로 모임이 꾸려졌는데 이제는 정주민과 이주민의 참여도가 반반씩 된다”고 말했다. 보배책방이 오후가 돼야 문을 여는 이유도 모임과 행사 때문이다. 보배책방에서 열리는 모임과 행사 대부분이 오전 시간에 진행된다.

“보배책방이 제주의 다른 책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책이 다양해요. 권수는 많지 않아요. 대신 다른 서점에는 없는 책이 많아요. 인문·교양서가 다른 서점보다 많은 편인데, 환경이나 여성 관련 책이 특히 많아요. 책방지기가 말이 많다는 것도 다른 점이겠네요. 손님이 책을 선뜻 집지 못한다 싶으면 제가 도와드려요. 보배책방을 흔히 큐레이션 책방이라고 얘기하는데, 이 때문일 겁니다. 23년간 책을 만들어온 사람이 엄선한 책, 뭐 이런 거요.”

'보배책방' 곳곳에는 이렇게 책방지기가 손수 적은 추천 도서 목록이 붙어 있다. 음식, 기후, 동물에 관한 추천 책 목록이다.

'보배책방' 곳곳에는 이렇게 책방지기가 손수 적은 추천 도서 목록이 붙어 있다. 음식, 기후, 동물에 관한 추천 책 목록이다.

보배책방 간판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느리게 읽기 함께 읽기’라고 쓰여 있다. 보배책방 인스타그램에는 여기에 한 구절이 더 쓰여 있다. ‘까칠하게 읽기.’ ‘까칠하다’는 형용사에 신뢰의 의미도 있다는 걸 이 용례에서 새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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