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네책방 산책③ 제주풀무질
‘풀무질’이라는 서점이 있다. 40년 가까이 서울 성균관대 앞을 지키고 있는 사회과학 서점이다. 1980∼90년대 성대를 다닌 학생에게 풀무질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풀무질은 성대생의 사랑방이자 아지트였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성대생은 풀무질 벽 메모판에 약속 쪽지를 써 붙였고, 『공산당 선언』 같은 소위 ‘불온서적’을 사 읽었고, 집회가 있는 날이면 몰래 유인물을 숨기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사회과학 서점이 하나둘 문을 닫아도 풀무질만큼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다.
그 풀무질을 26년간 지켰던 주인공이 은종복(57)씨다. 정확히 1993년 4월 1일부터 2019년 6월 11일까지 26년 2개월 11일간 책방지기였다. 풀무질을 맡았을 때 스물여덟 살 청년이었던 은씨는 쉰네 날 중년이 되어 풀무질에서 나왔다. 성대 앞 풀무질의 산증인이었던 은 대표가 제주도에 내려와 차린 서점이 ‘제주풀무질’이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당근밭 복판에 들어앉아 있다.
“다른 사회과학 서점처럼 풀무질도 어려웠어요. 월세만 겨우 내고 있었으니까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와 버텼는데, 한 번은 아들 명의로 2000만원을 대출받았다가 아내에게 들켰어요. 아내가 가족과 서점 중에 선택하라고 하더군요. 결국 가족을 택했습니다. 어머니 도움으로 마련했던 아파트를 팔아 빚 1억5000만원을 갚고, 풀무질을 맡겠다고 나선 청년들에게 넘겼어요. 그리고 제주도로 내려왔습니다. 제주에 연고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제주에서 작은 책방을 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풀무질이란 이름은 지키고 싶었어요. 서울 풀무질을 새로 맡은 친구들이 제가 제주에서 풀무질이란 이름을 쓸 수 있게 허락해줬습니다.”
은 대표가 제주에서 풀무질을 연 건 2019년 7월 25일이다. 같은 동네지만, 지금의 자리는 아니었다. 2년간 그럭저럭 서점을 꾸려왔는데, 갑자기 집주인이 월세를 두 배 올려 버렸다. 고민 끝에 대출을 받아 당근밭 사이 50년 묵은 농가와 주변 땅을 샀다. 농가는 고쳐 서점으로 쓰고, 농가 뒤편에 살림집을 마련했다. 지금 자리에서 풀무질을 연 건 2021년 7월 1일이다. 은 대표는 “15년간 은행 빚을 갚아야 하지만, 서점 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내 집에서 서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풀무질은 서울 풀무질과 여러모로 다르다.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쁘다. 하얗게 칠한 서점 내부는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가득하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팽나무와 밭담, 그리고 당근밭이 액자 속 사진 같다. 제주풀무질을 찾는 손님의 70%가 관광객이라고 했다. 에세이와 어린이책, 문학 서적이 주로 나간단다. 은 대표 얼굴도 훨씬 좋아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빚을 이고 사는데, 말투와 몸짓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그는 “몇 년 전에 술을 끊었고 채식을 한다”고 말했다.
제주풀무질이 풀무질의 전통과 단절한 건 아니다. 서가 한쪽이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 빼곡하다. 눈길이 가장 잘 가는 자리에『자본론』이 꽂혀 있다. “『자본론』을 사 간 사람이 있느냐” 물었더니 “물론이다”는 답이 돌아왔다. 은 대표는 “제주풀무질이 제주에서 사회과학 서적이 제일 많은 서점”이라며 “제주 대학의 교수와 학생도 주요 고객”이라고 말했다.
은 대표가 제주풀무질에서 가장 공들이는 건 독서모임이다. 10개나 되는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다. 절반은 온라인 모임이지만, 한 달 일정이 각종 모임으로 꽉 차 있다. 독서모임에서 주로 읽는 책은 생태와 기후 관련 서적이다. 은 대표는 “제주에 내려와서 환경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문득 궁금했다. 26년 세월과 맞바꿨던 책방을, 그것도 돈 안 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그는 왜 놓지 못하는 걸까.
“돈 벌 욕심으로 서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책을 통해 조금씩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 서점을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와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