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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만에 6000만원 모였다…불탄 제주 그림책방 살린 기적

중앙일보

입력

제주 동네책방 산책② 그림책방 노란우산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읍에 있는 그림책방 노란우산 2호점. 제주 최초의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읍에 있는 그림책방 노란우산 2호점. 제주 최초의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책방이 금방 다 탔어요. 워낙 오래된 집이다 보니… 누전이 됐어요. 정말 막막했는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제 사연을 들은 누군가가 전국 책방 주인들에게 알렸고, 책방 주인들은 작가와 출판사에 알렸고, 작가와 출판사가 독자들에게 알리면서 전국에서 모금 운동이 일어났어요. 불과 36시간 만에 6000만원이 모였어요.  3000만∼4000만원 모금이 목표였는데, 너무 갑자기 큰돈이 모이는 바람에 서둘러 모금을 중단했다고 들었어요.”

‘그림책방 노란우산’ 이진(44) 대표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1년도 지난 일인데,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듯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읍 서광리에 있는 제주 최초의 그림책 전문 서점은 지난해 9월 화재로 건물 뼈대만 남기고 전소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책방은 그림책 속 그림 같았던 예의 그 모습으로 돌아갔고, 책방을 찾는 발길은 외려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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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방 노란우산 이진 대표.

그림책방 노란우산 이진 대표.

이진 대표가 남편 김종원(48)씨와 제주에 내려온 건 2015년 2월이다. 들어보니 사연 많은 부부였다. 전남 보성 출신인 아내는 정신과 병동 간호사였고, 대구 출신 남편은 목사를 그만두고 카페를 하고 있었다. 둘은 결혼해 대전에서 아들 둘을 두고 살았는데,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됐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크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도시 학교는 보내기 싫었고 몇 군데 알아본 시골 마을은 눈에 안 찼다. 어디에서 살까 고민하다 제주도를 생각해냈다. 이진 대표는 사실 섬사람이다. 전남 고흥 나로도에서 태어나 소녀 시절을 보냈다(그때는 나로도에 다리가 없었다). 이진 대표는 ”섬은 구름도 다르다“고 말했다. 고향 섬에서 봤던 섬 구름을 제주에서 다시 보니 그렇게 반가웠단다.

그림책방 노란우산.

그림책방 노란우산.

처음에는 이 자리에서 카페를 했다. 나쁘지는 않았다. 멀지 않은 거리에 오설록 같은 이름난 관광지가 있는 데다 남편이 내리는 커피가 맛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손님이 “책방을 같이 해도 좋겠다”고 말한 게 부부의 인생을 바꿨다. 부부는 이내 의기투합했고. 책방 개업을 준비했다. 쉽지는 않았다. 책은 좋아했지만, 책으로 먹고살 생각은 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2016년 8월 책방을 냈다. 그림책 전문 책방을 낸 건, 그림을 좋아하는 이진 대표의 뜻이었다. 그림책을 알기 위해 16개월간 그림책 작가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책방 이름은 서울 보림출판사의 ‘그림책방카페 노란우산’에서 허락을 받고 빌려왔다. 허락을 받아서라도 ‘노란우산’이란 이름을 쓰고 싶었단다.

“관광객 손님이 제일 많아요. 아이와 함께 온 부모도 있지만, 그림책 매니어가 일부러 찾아오기도 해요. 제주는 물론이고, 전국에서도 그림책 전문 서점은 많지 않으니까요. 요즘 그림책 테라피가 인기잖아요. 그림책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 거죠. 그림 치료보다 효과가 높습니다. 그림책 테라피는 아이보다 부모에게 더 필요합니다. 제가 정신과 소아 병동에서 일할 때, 부모의 문제 때문에 아이가 아픈 사례를 많이 봤습니다.”

그림책방 노란우산에서 전시 판매 중인 그림책들.

그림책방 노란우산에서 전시 판매 중인 그림책들.

그림책방 노란우산 2호점 내부 모습.

그림책방 노란우산 2호점 내부 모습.

현재 제주에는 ‘노란우산’이란 이름의 책방이 두 곳 있다.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노란우산’이 1호점이고, 서광리 ‘노란우산’이 2호점이다. 책방을 두 개나 하고 있으니 돈을 많이 벌었겠다 할 수 있겠으나, 안타깝게도 오해다. 1호점은 원래 동업을 하다 사정이 생겨 억지로 떠맡게 됐다. 현재 1호점은 남편이, 2호점은 아내가 맡고 있다. 물론 두 곳 모두 그림책 전문 책방이고, 두 곳 모두 겨우겨우 꾸려간다.

“작년에 성금 보내준 분이 400명이 넘었대요. 장학금을 보낸 대학생도 있었다고 해요. 저희 서점을 전혀 모르는 분도 성금을 보내셨어요. 저는 정말 잘해야 돼요. 그분들께 보답하는 건 제가 책방을 잘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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