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불란한 정치 벗어나자/이헌재(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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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사불란함과 효율이 강조되는 획일적이고도 단원적인 권위주의 체제에 젖어서 오랜기간 지내다 보면,민주화라는 과정이 빚어내는 각종 다원적인 이해상반이나 마찰과 갈등 등을 합의에 의해 풀어가는 과정이 지지부진하고 매끄럽지 못하게 되고,여기서 걱정과 불안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물론 필자도 그중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일어나는 각종 사회문제가 마치 후진성의 표본처럼 보이기도 하며 심지어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심각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불안감은 그동안의 체제에 젖다 보니 증폭된 감이 없지 않으나,이를 십분 감안하고 보더라도 최근 정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누구나가 똑같이 느낄 만큼 그 정도가 지나치다.
○과거 당쟁악습 되풀이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세계 각국은 새로운 질서를 향해 변화를 수용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 최근 벌어진 내각제합의각서 유출파동과 이를 처리하는 민자당의 수습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는 전향적인 추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 수백년간 선조들이 보여 준 당쟁의 악습을 퇴영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역사의 잘못된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과거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없으면 굴곡된 역사는 도리없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조선왕조의 출범부터 싹트기 시작한 정권을 둘러싼 갈등과 분열은 당파싸움으로 가열된다. 임진왜란ㆍ병자호란 등 국가존망의 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파의 이익과 존립을 위해 저질러진 음모와 음해의 그늘진 역사에는 승자독점의 권력논리만이 강조되었다. 정파간에는 선의의 경쟁과 타협을 통한 권력의 공유 내지 승계체제라는 것이 하등 자리잡을 여지가 없이 대를 물려가면서 당쟁이 일어났다.
서로가 반대파와의 공존을 용납할 수 없는 입장으로 내몰아 가고,여기에다 지고지선을 추구하는 유교적인 관념론이 결합됨으로써,외형상으로는 마치 명분을 내건 논쟁으로 내비치나 실제로는 그 속에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이 일정한 패턴 아래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반대파 공존 용납 안 해
반대파의 비리나 모반을 고발하는 상소(문제의 발단),음모와 음해의 확산,절대 군주인 임금 앞에서의 조사와 친국의 진행,유배와 사약 등 관련자의 엄벌,그후 인사의 정파간 안배에 의한 사태의 무마,그리고 추후 문제의 재론을 엄금한다는 지엄한 하명이 내려지고,일정기간 후에 관련인사의 사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형화된 패턴을 따라서 정쟁은 일년이 멀다 하고 되풀이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당파싸움은 잠복해 있다가 세대를 뛰어 넘으면서 언제나 같은 패턴을 거듭하고 반복ㆍ심화되어 골의 깊이를 더해갔다. 어쩌면 지금에 봉합된 듯한 민자당의 사태수습을 지켜봄에 있어서도 우리의 과거사는 일단의 시각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느껴지는 전조는 과거와 비교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과거 당쟁의 회오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 아니면 도」라는 이분논리에 휘말려 역사의 발전이 수백년간 정체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다시 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노파심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차례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에서 당쟁은 왜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으며,절대군주조차 당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휘말려야만 했을까.
첫째는 명분론이 앞서 파벌을 인정하지 않은 데 있었다. 오로지 모든 신하는 똑같이 한 임금만을 섬긴다는 명분 하에 당파라는 현실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파쟁은 수면 밑으로 숨어들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고,정파가 현실적으로 인정되어야 서로가 다른 점을 알고 타협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데 원천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권력의 나눠먹기 방식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데도 원인이 있었다. 우리 나라의 정계도 현실이 인정하는 계파는 당내에서도 인정하고 타협의 방식을 꾀하든지,아니면 확고하게 민주적 절차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즉 애초에 철저한 당내 민주화를 통해 주요당직과 업무를 경선 등 민주적 절차에 따라 맡겨 가든지,아니면 지금이라도 일본 자민당의 예처럼 아예 내놓고 계파간의 안배로써 정권을 유지해 가겠다고 공언하고 국민에게 선거를 통해 그 의사를 물어나가든지 택일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서로가 승복을 못해 떠나는 것을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 이합집산이란 선진국에서조차 일반적인 바,당이라는 것이 항시 한가지로 일사불란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어느 쪽이 더 민주적이고 미래지향적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효율적인 신세대 필요
이도저도 아니라면 우리는 새로운 세대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먼저 기성정치권 내부에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풀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획기적인 변혁의 몸부림이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새로운 사고로 무장한 신세대를 갈구하게 된다. 세대교체란 생물학적이고 연령적인 것이어서는 의미가 없다.
기성정치권에서도,또 새로운 세대에서도 타성과 역부족이 느껴질 때 차라리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서 선진화된 정치의식,시민의 정치적 힘을 본 때 있게 보여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한국신용평가(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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