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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실 등 55곳 압수수색…관련자 줄소환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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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8일 오전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집무실 등 55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지방자치단체·소방당국의 지휘·보고 라인과 경찰 지휘부의 과실 여부 규명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수본이 지난 7일 입건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류미진 총경 등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직무유기 등의 혐의 입증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특수본의 이날 압수수색 대상은 경찰과 용산구청, 소방과 서울교통공사 4개 기관으로 분류된다. 용산구청은 재난안전법상 재난관리 책임기관이며, 소방은 긴급 구조기관, 경찰은 긴급 구조지원기관에 해당한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참사 당일 이태원역 무정차 요청 여부를 두고 경찰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수본의 한 관계자는 “사고 관련 경찰이나 용산구청, 소방 등 모든 기관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전했다.

경찰의 경우 이태원 인파 운집 관련 안전대책을 사전에 소홀히 했는지 여부와 사고 전후 대응 및 보고 과정이 조사의 초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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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수본 관계자가 8일 서울 용산서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특수본은 이날 4개 기관 55곳을 압수수색했다. [뉴스1]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수본 관계자가 8일 서울 용산서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특수본은 이날 4개 기관 55곳을 압수수색했다. [뉴스1]

용산구청에 대해선 재난안전법상 주무 지방자치단체로서 안전대책 수립 및 상황 대응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소방에 대해선 ‘구급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등의 이유로 경찰의 공동대응 요청을 사실상 묵살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된 상태다. 다만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 사고 현장 인근 해밀톤호텔은 포함되지 않았다. 해밀톤호텔은 불법 건축물을 설치해 사고 골목 일부 구간 폭을 3.2m까지 좁아지게 해 병목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중앙일보 보도로 알려진 곳이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는 지난 2일 첫 압수수색 당시 제외했던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 집무실도 포함됐다. 특수본은 윤 청장 등의 휴대전화도 압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뇌부 압수수색은 ‘셀프 수사’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윤 청장은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이임재 전 서장 집무실과 휴대전화 압수수색 여부를 두고 “현재까진 하지 않았고, 추가로 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특수본은 지휘부 보고·감독을 받지 않는 독립적 특별기구로, 윤 청장 지시로 지난 1일 설치됐다.

특수본은 현재까지 이임재 전 서장과 류미진 총경, 박희영 구청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 6명을 입건했는데, 이 중 총경 이상 경찰 간부는 두 명이다. 사고 지역을 관할하는 용산서장이었던 이 총경은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직무유기 혐의로, 참사 당일 서울청 당직 상황관리관이었던 류 총경은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됐다. 윤 청장과 김 서울청장 집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 두 사람(이 총경, 류 총경)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특수본 관계자 설명이다. 압수물 분석이 끝나면 이임재 전 서장, 류미진 총경, 박희영 구청장, 최성범 서장 등 관련자들이 특수본에 소환될 전망이다.

이 총경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15분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50분 만인 오후 11시5분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고, 112 종합상황실을 벗어난 류 총경은 그로부터 34분 뒤 첫 보고를 받고 상황실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두 사람 혐의 입증에 집중하는 모양새지만, 법조계에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총경의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다퉈볼 만하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어떤 조치들을 취할 수 있었느냐와 관련해선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경에게는 직무유기 혐의도 적용했는데,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와 양립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용산서장이 늦더라도 현장에 도착했고, 어떤 지시를 했다면 직무유기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류 총경에게는 직무유기죄 혐의만 적용된 상황이다.

이 총경과 류 총경 모두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직무유기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0·29 참사 대응 TF’ 공동간사인 이창민 변호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청이나 용산서가 집회·시위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경비 인력을 의도적으로 출동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직무유기죄도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경찰의 책임소재 규명과 관련해 윤 청장과 김 서울청장으로도 관련 혐의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도의적인 책임을 떠나 법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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